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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然珏       본관 : 綾城具       작성일 : 2009년 05월 06일(수) 01:04
  • 제 목 : 綾城具씨, 綾州具씨 통합해주시기 바랍니다.
  • 같은 본관인데 분리되어 있네요.
    그리고, 과거 급제자수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대과소과 및 무과 통합 780명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3대 무인집안(임란전 이전까지는 1대)이기도 합니다.
    족보 발행년은 1575년으로 성씨 가운데 4번째로 족보가 발행되었습니다.
    많은 사료를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그리고 귀화성씨로 잘못 나오는데 이점도 수정해주세요.

    참고하시면, 시조는 분명 고려인입니다.

    출처 : http://confucian.ruc.edu.cn/chn/shownews.asp?newsid=437

    程朱理学传入高丽,主要是高丽文人安土向、白颐正等精英起了很大的作用,但是,不能否认,朱赞等朱熹后裔定居高丽,建孔庙和书院为宋明理学在韩国民间的传播和发展也发挥了相当大的作用。朱潜于南宋光宗绍熙五年(1194)生于“建阳县三桂里玉枕峰下考亭之正寝”,时曾祖父朱熹63岁。他在建阳考亭过了幼年时代,7岁时,朱熹去世。朱潜的父亲朱钜是一位很有民族气节的英雄,曾任福建顺昌县令。宋宁宗开禧二年(1206),居住于我国北方的靺鞨族奴隶主称蒙帝,灭西河燕南,大肆南下侵扰。面对这种形势,朱钜受命与车骑将军崔锡秀一道率军北伐,在一次战斗中“力战不屈而殉节”。朱潜为此怀着不共戴天之仇,东渡朝鲜半岛。朱潜所生的两个儿子朱余、朱许和女儿亦随父定居高丽。朱余后改名朱余庆,高丽王廷任其为密院直司,封为汝阳公。朱徐为朱余之弟。朱潜之女则嫁给高丽人具存裕。朱余庆生子三人:朱悦、朱忻、朱怩。朱悦在高丽高宗时(公元1214年~1259年)登第,在高丽高宗时朝、元宗时期、忠烈王时期皆任高级职务。高宗时“累迁监察御史,历宰相、静二川、昇天、长兴二府,皆有声绩。元宗朝以兵部郎中连按忠清、庆尚、全罗,成名日振,人皆敬畏。国有大事择使命则必首举之。忠烈即位,重悦才名,授翰林学士迁三司使。” 朱悦“文章富赡,笔法亦奇”, 有诗文问世。朱悦有子三人,即朱印长、朱印远、朱印还。朱印长历任高丽全罗按廉使兼巡查使、吏部尚书。朱印远历任安州兵判官、礼部侍郎、庆尚按廉使兼劝农事、兵部尚书。朱印远任会议府事。 高丽全罗南道和顺郡的道岩南洛阳山下,曾有朱潜之墓和朱潜女婿具存裕之墓。惜今已亡失。同道和顺郡云山南铁场里后麓,曾有朱潜长子朱余庆之墓,同道和顺邵绫州连珠山之怀德洞贞震原有朱潜之孙朱悦之墓,为高丽忠烈王时所葬。其后,李朝纯宗议政府右赞成兼成均馆祭酒宋焕基之撰墓表,至今犹存。在韩国全罗南道光州南部绫州连珠山浼安洞曾有朱悦长子朱印长之墓,今已亡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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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한시민 아 님아 이렇게다 한자만 가져다가 놓으면 어쩌라는거야ㅡㅡ;;; 2009.05.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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