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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목 : 동성동본 시조가 2명 '역사 왜곡'ㆍ'족보 기록' 공방

  • 청주 송씨 문중이 두 명의 시조(始祖, 가계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를 놓고 시끄럽다. 송유충(宋有忠)을 시조를 둔 송유충 후손과 송춘(宋椿)을 시조로 둔 송춘 후손이 대립하고 있다.

    청주 송씨 두 시조를 기록한 문헌은 편찬 연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송유충의 기록은 400년 전 조종운이 편집한 ‘씨족원류’에 나오는 데 반해 송춘은 1977년에 편찬한 ‘한국인의 족보’의 기록에서 처음 나온다.

    청주 송씨 시조를 송유충으로 등재한 문헌은 ‘씨족원류’뿐 아니라 ‘전고대방’, ‘4천년문헌통고’, ‘조선씨족통보’, ‘한국계행보’, ‘한국씨족2천년사’로 조선시대 고전문헌 한문판이다. 이에 반해 송춘을 시조로 기록한 문헌은 ‘한국인의 족보’ 외에 ‘성씨의 고향(1990)’, ‘한국인 족보(1996)’, ‘한국성씨보감(2000)’에 나온다. 이 문헌들은 송춘을 시조로 하는 하계파(말골파) 송세홍, 송정학이 편찬했다.

    송종복 청주송씨대종회장은 “족보는 자기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 편찬됐기 때문에 시조를 증명하는 자료가 될 수 없다”며 “한국학중앙연구원 A 실장은 청주 송씨 시조는 씨족원류 문헌을 보면 송유충이 분명하고 송춘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지난 2016년 8월 청주 송씨 시조를 송춘에서 송유충으로 정정했다.

    송 회장은 이어 “문헌에 기록된 정확한 사실과 자료에 따라 청주 송씨의 시조를 확인해야 한다. 억지로 끼워 맞춰 시조를 바꾸면 안 될 뿐 아니라 문종의 시조가 두 명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송춘 후손 송세광 대종회장은 “아버지를 시조로 모시든 아들을 시조로 모시든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문중 문제를 바깥에 알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윗대 어른들이 정립해 놓은 족보에 보면 송춘이 시조인 게 분명한데 지금와서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언제부터 청주 송씨의 시조가 두 명으로 갈라졌을까? 1928년 일제강점기 때 청주 송씨 파 간에 증손권을 두고 송사가 있었다. 당시 판사는 송유충의 7대손 송창의 아들 송빈과 송밀을 두고 송빈이 증손이라는 판결을 했다. 부사공파 측은 송밀이 증손이라고 소송을 걸었지만 당시 소송에 패하고도 승복하지 않았다. 송 회장은 “부사공파는 그후 선조를 달리하고 고전문헌에 나오지도 않는 송춘을 시조로 내세웠고 족보도 달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224개 문중의 조형물이 있는 대전 뿌리공원에 청주 송씨 조형물의 유래문에는 시조가 송춘으로 새겨져있다. 이를 두고 송유충 후손은 청주송씨대종중(등록일자 1994년 4월 1일)의 이름으로 유래문 수정신청서를 지난해 9월 대전광역시 중구청장에게 냈다. 신청서에 따르면 청주 송씨의 시조를 가공인물 ‘송춘’을 썼기 때문에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조형물 접수 당시에는 임의단체로 직인과 등록증 없이 대종회장, 총무를 사칭해 목도장을 찍어 접수했기 때문에 명백한 허위라는 것이다.

    송종복 회장은 “동성동본에 시조가 2명이고 대종회장이 2명, 증손이 2명, 직인이 2개가 있을 수 없다”며 “잘못된 세계를 하루속히 고쳐 뿌리 깊은 문중의 바른 정기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 뿌리공원과 담당자는 “문중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은 중요한 일이다”며 “문중의 시조가 두 분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법원이 역사를 기초로 해서 시조를 바로 잡으면 뿌리공원의 유래비에 새겨진 시조 송춘은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유충 후손은 지난해 6월 28일 시조 정립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청주송씨 시조정립추진위원회 규정(안)’을 마련했다.

    또한 지난 2월 창원지방법원에 청주송씨 주부공파 대표자 송흥태 등 4명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대전지방법원에 대전광역시 중구청을 상대로 조형물 철거 및 신규 설치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2019년 3월 31일
    경남매일 류한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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