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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목 : ‘집단적 가계의 기록’ 족보

  • 족보는 한 가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족보는 한 성(姓)씨의 시조를 시작으로 그 집안의 이야기와 이력을 담고 있다. 같은 성씨를 지닌 동족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기억의 산물이다. 이 집단적 가계의 기록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때문에 그 안에는 우리 민족의 개별 가족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도 하다. 이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전통이자 가문의 아카이브이다.

    동양에서는 중국이 처음으로 성씨를 사용하였으니 족보가 태어난 곳도 역시 중국이다. 황족 혈통을 기록하는 제왕연표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개인이 족보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 이후부터이다.

    외국의 경우 왕실이나 귀족의 특권층만이 족보를 가졌다. 대개는 자기 집안의 간략한 가계사만을 지니고 있었는데, 현재 유럽에 아직도 존재하는 폐쇄적인 귀족클럽과 영국의 서(sir)나 프랑스의 드(de)라는 귀족 칭호를 보면 보편화 되지 않은 족보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중동에서는 기록된 족보가 드물며, 자신의 이름 뒤에 아버지/할아버지/증조부의 이름을 순서대로 연명(連名)함으로써 자신의 가계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성씨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한자가 유입되면서 성씨와 족보가 생겨났다고 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시조 전설에서 족보의 기원을 볼 수 있다. 고려 건국 이후 태조 왕건은 공신과 호족에게 성을 부여하였는데, 우리 역사에 족보(성씨제도)가 본격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 '백성(百姓, 백 사람에게 성을 주었다)'이란 말이 등장했다는 학설도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이 시기 성을 가진 지배계층은 국가 기관인 관사(官司)에서 기록하고 관리하였다고 한다. 조선 성종 7년(1476) 서거정이 서문을 쓰고 간행한 안동권씨 '성화보'는 가문에서 발간한 족보의 일례를 볼 수 있다.

    족보는 한국인의 독창적인 작명과 항렬자(돌림자) 사용, 시기에 따라 기록 방식변화(계보·세보·파보 등)는 누대에 걸쳐 많은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16세기의 왜란과 17세기의 호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변질된 족보의 매매와 조작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로 인해 30~50년의 기간을 두고 개정, 증보되어 편찬되는 우리의 족보는 그 자체로 고스란히 한 세대가 속했던 그 시대의 역사를 아카이브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화예술 아카이브 구축을 함에 있어 세계 유일무이한 한국의 족보를 온고지신하여 활용하고 확대, 접목한다면 고유의 특별한 '도시 문화예술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빠르게 다원화, 개인화 되어가는 현대에 집안 한구석에 먼지 쌓여있을 족보를 꺼내어 한 가문의 일대기를 펼쳐보며 우리 가족의 과거와 현재 우리들 삶의 희노애락을 오늘 함께 느껴봄은 어떨까?


    2020년 4월 20일
    매일신문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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