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자명(子明). 호는 완역재(玩易齋). 조선 태조 때 동북면도순문사를 역임한 회백(淮伯)의 아들이며, 심온(沈溫)의 사위이고 희맹(希孟)의 아버지이다. 태종 초에 음사(蔭仕)로 계성전직(啓聖殿直)이 되었으며, 공조좌랑으로 재직중이던 1416년(태종 16)에 천추사(千秋使)가 가지고 간 무역품 중에서 공조가 납품한 은이 가짜로 판명되어 파직되었다. 세종 초에 지양근군사(知楊根郡事)로 발탁되어 선정을 베풀면서 인수부소윤(仁壽府少尹)에 승진되어 집의를 역임하였고, 일시 면직되었다가 1441년(세종 23) 우부승지로 복직되었다. 그뒤 좌부승지와 좌승지를 역임하고, 1444년에 호조참판으로 승진, 이듬해에 대사헌, 1446년에는 산릉도감제조(山陵都監提調)가 되어 세종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국상에 참여하였다. 1447년 개성부유수로 출사했다가 1449년 중추원사로 입조하였고, 1450년(문종 즉위년) 동지중추원사, 이어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1455년(세조 1)에는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으로 책록되면서 가자(加資)되었다. 일생 동안 학문에 힘쓰고 청렴강개하였으며, 효우(孝友)가 지극하여 명망이 높았다. 저서로 '완역재집'이 남아 있다. 시호는 대민(戴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