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계명(季明). 호는 지족당(知足堂). 영의정 경진(景○)의 손자이며, 도정(都正) 준(竣)의 아들이다. 효종 때 성균관에 입학하였다가 효종이 북벌(北伐)을 위하여 훈척(勳戚)의 자제들에게 무예를 닦게 하자 유생을 이끌고 무예를 연마하였다. 현종 초기에 선전관을 지낸 뒤 무과에 급제하였다. 1669년(현종 10) 충청도수군절도사를 거쳐, 1671년 통제사, 이듬해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지내고, 1675년(숙종 1) 병조참판을 거쳐 1680년 경신대출척 때는 총융사가 되어 서인편에 서 활동하였다. 그뒤 공조판서를 거쳐 1688년 형조판서로 훈련대장을 겸하고, 1694년 갑술옥사 때 판의금부사로 장희재(張希載) 등을 처벌하였다. 1695년 형조판서, 1700년 호조판서, 이듬해 다시 훈련대장이 되고 공조판서를 지냈다. 당쟁이 격화되었던 시기에 병권의 요직을 거치면서 서인편에 서서 큰 정치적 역할을 하였다. 시호는 장무(莊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