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즐겨찾기 등록











 
탐진안씨(耽津安氏, 강진)
유래
  •  시조 : 안원린(安元璘)
    시조 안원린(安元璘, 시호는 문열)은 고려시대에 정당문학 검교중추원사를 역임하고 탐진군에 봉해졌다. 그는 순흥 안씨의 시조 안자미의 7세손의 3형제 (안원숭, 안원형, 안원린) 가운데 안원숭은 순흥 안씨를 계승하고, 안원형은 신죽산 안씨를, 안원린은 탐진 안씨의 시조가 되었다. 일부는 강진안씨라고 하나 탐진은 강진의 옛 지명이므로 같은 본관이라고 한다.

    - 묘소는 전주시 삼천동 능내에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3일에 향사한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안철(安喆, 1576 丙子生) : 무과(武科) 선조39년(1606) 식년시 을과(乙科)
 안여지(安汝止, 1532 壬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3년(1558) 식년시 이등(二等)
 안정휘(安廷輝, 1794 甲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4년(1867) 식년시 삼등(三等)
 안효손(安孝孫)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연산군7년(1501) 식년시 삼등(三等)
 안성수(安成壽, 1791 辛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철종12년(1861) 식년시 삼등(三等)
 안형(安炯, 1829 己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철종9년(1858) 식년시 삼등(三等)
 안극가(安克家, 1547 丁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24년(1591) 식년시 삼등(三等)
 안택수(安澤壽, 1848 戊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년(1864)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8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생원진사시 7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22世
      동(東)
      기(基)
      23世
      욱(旭)
      용(瑢)
      24世
      병(昞)
      영(永)
      25世
      형(衡)
      근(根)
      26世
      -
      27世
      -
      28世
      -
      29世
      -
      30世
      -
      31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3世孫은 22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강진
    탐진(耽津)은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에 속해 있던 옛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동음현(冬音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탐진으로 고쳐서 양무군(陽武郡)에 예속시켰으며, 고려시대에는 영암(靈巖)에 속하게 하였다가 뒤에 장흥(長興)으로 이속시켰다. 1417년(태종 17)에 병마도절제사영을 도강현(道康縣) 소재지에 옮기고 두 현을 합하여 강진으로 개칭하였고 치소는 탐진으로 하였다. 1429년(세종 11)에 도강의 송계(松溪)로 옮겼는데 1475년(성종 6)에 탐진으로 돌아갔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탐진군으로 승격되어 나주부(羅州府)의 관할이 되었고,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백도면(白道面) 일부를 해남군에 이속하였고, 가우도(加牛島)를 합쳤고, 1936년 강진면이 강진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탐진안씨는
    1985년에는 총 2,399가구 10,023명,
    2000년에는 총 3,558가구 11,03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