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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이씨(富平李氏)
유래
  •  시조 : 이희목(李希穆)
    시조 이희목(李希穆)은 고려 태조를 도와 삼중대광 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에 올랐다.
    증손인 이정공(李靖恭)이 문과에 급제하여 1062년(고려 문종 16년) 시예부외랑(試禮部外郞), 지남원부사(知南原府事), 시어사(侍御史) 한림학사(翰林學士), 예부상서(禮部尙書), 병부상서(兵部尙書), 참지정사(參知政事), 수국사(修國史)를 거쳐 1083년 중서문하시랑 평장사(中書門下侍郞平章事)에 오르고, 1086년 문하시중(門下侍中),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에 이르러 부평백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부평으로 하고 있다.
인물
고려시대에 문하시중을 지낸 이위(李瑋)는 문과에 급제, 선종때 호부 원외랑(戶部員外郞)을 지냈으며 숙종때
서북면 행영 병마사(西北面行營兵馬使)가 되어 여진족을 정벌했다. 1109년 추밀원사(樞密院使)를 거쳐 그후 참지정사(參知政事),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어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가 되고 좌리공신(佐理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수태보(守太保),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에 올라 태전(太傳), 계양군개국백(桂陽郡開國伯)에 봉해졌다. 1122년 계양공(桂陽公)에 봉해지고 그후 중서령(中書令)으로 진정공신(鎭定功臣)의 호를 받았다.

조선시대 이조판서(吏曺判書)를 지낸 이세화(李世華)는 1657년 생원(生員)으로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장령(掌令)을 거쳐 황해도, 평안도,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왔다. 그후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호조판서(戶曺判書)에 이어 판의금부사 겸 지경연사(判義禁府事兼知經筵事)를 지내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공조(工曺), 형조(刑曺), 병조(兵曺), 이조(吏曺)의 판서(判書)를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가 되었으며,
이연제(吏延濟)는 1699년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정언(正言), 지평(持平), 사간(司諫) 등을 거쳐 1721년 홍주목사(洪州牧使)를 지내고 1723년 우승지(右承旨)로서 노론(老論) 축출에 가담했다. 한 때 노론의 집권으로 사직되었다가 영조때 경기도관찰사,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가 되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섭원(李燮元) : 문과(文科) 영조13년(1737)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경삼(李敬參, 1763 癸未生) : 문과(文科) 정조22년(1798)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경심(李敬心, 1746 丙寅生) : 문과(文科) 영조50년(1774) 정시 병과(丙科)
 이극효(李克孝) : 문과(文科) 세종17년(1435) 식년시 병과(丙科)
 이진만(李鎭晩, 1795 乙卯生) : 문과(文科) 순조23년(1823) 정시 병과(丙科)
 이정제(李廷濟, 1670 庚戌生) : 문과(文科) 숙종26년(1700) 춘당대시 병과(丙科)
 이상재(李尙載, 1607 丁未生) : 문과(文科) 인조11년(1633) 식년시 병과(丙科)
 이규(李○) : 문과(文科) 태종11년(1411)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이헌경(李軒卿, 1851 辛亥生) : 문과(文科) 고종11년(1874) 증광시 병과(丙科)
 이세화(李世華, 1630 庚午生) : 문과(文科) 효종8년(1657)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68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9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37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경기도 화성군 일원
    -경기도 김포군
    -경기도 개풍군 북면 일삼소리
    항렬자
    • 25世
      ○영(永)
      ○인(寅)
      26世
      병(秉)○
      27世
      연(演)○
      28世
      ○경(卿)
      29世
      ○진(振)
      30世
      기(起)○
      31世
      ○현(鉉)
      ○년(年)
      ○남(南)
      ○오(旿)
      32世
      태(泰)○
      래(來)○
      33世
      ○식(植)
      34世
      용(容)○
      35世
      ○규(圭)
      36世
      종(鐘)○
      37世
      ○호(浩)
      38世
      동(東)○
      39世
      ○노(魯)
      40世
      치(致)○
      41世
      ○호(鎬)
      42世
      승(承)○
      43世
      ○주(柱)
      44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6世孫은 25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인천광역시
    부평(富平)은 경기도 부천시 일대에 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의 동남부지역이었다. 백제와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이라 불리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장제군(長堤郡)으로 개칭되어 한주(漢州: 廣州) 관하에 있었으며, 영현으로 분진(分津: 通津)·김포(金浦)·동성(童城)·술성(戌城) 등 4개현을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수주(樹州)로 개칭되었으며, 995년(성종 14)에 단련사를 파견하였다가 1005년에 혁파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주로 승격하였다가 1150년(의종 4)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개칭하였고, 금천(衿川)·동성(童城)·통진(通津)·공암(孔巖)·김포(金浦)·수안(守安) 등을 속현으로 포함하여 넓은 면적을 관할하였다. 1215년(고종 2)에는 이곳 계양산의 이름을 따서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했으며, 1308년(충렬왕 34)에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부평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다시 부평도호부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천부 부평군이 되었으며, 1896년 경기도 부평군이 되었다. 1914년 군부(郡府) 폐합령에 따라 넓은 지역이 인천부(仁川府)에 속하게 되었고, 나머지 지역과 주변의 일부지역을 합쳐서 부천군으로 발족하였다. 1973년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소사읍을 중심으로 한 부천시로 승격하였다. 부평군은 인천광역시 부평구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부평이씨는
    1985년에는 총 1,228가구 5,090명,
    2000년에는 총 1,815가구 5,80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