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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씨(蔚山李氏)
유래
  •  시조 : 이철(李哲)
    시조 이철(李哲)은 고려 고종(高宗)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판전리 사사(判典理司事)에 올랐으며, 김취려(金就礪)을 도와 영변에서 글란군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다.
    이철은 경주이씨 1세조 이거명의 15세손이라고 한다.
    시조 이철이 학성군(현재의 울산)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울산을 본관으로 하고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순민(李舜民, 1569 己巳生) : 문과(文科) 선조27년(1594) 정시 병과(丙科)
 이근오(李覲吾, 1760 庚辰生) : 문과(文科) 정조14년(1790) 증광시 병과(丙科)
 이위(李○)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이진창(李震昌, 1646 丙戌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이경민(李景敏, 1553 癸丑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이이환(李爾桓, 1654 甲午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이정량(李廷樑,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정시 병과(丙科)
 이규로(李奎魯, 1833 癸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9년(1882) 식년시 이등(二等)
 이승혁(李升爀, 1809 己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7년(1880) 증광시 삼등(三等)
 이석방(李碩芳, 1654 甲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15년(1689) 증광시 삼등(三等)
등 모두 15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8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산(蔚山)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한 고장으로 본래는 진한(辰韓)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굴아화촌(屈阿火村)으로 파사왕(婆娑王) 때에 지변현(知邊縣: 戒邊城·神鶴城·火城郡)을 설치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하곡현(河曲縣)으로 고쳐 임관군(臨關郡)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이 고장 사람인 박윤웅이 태조를 도운 공으로 우풍현(虞風縣)과 동진현(東津縣)을 병합해 흥려부(興麗府)로 승격되었다가, 991년(성종 10)에 공화현(恭化縣)으로 강등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울주군(蔚州郡)이 되어 속현으로 동래현(東萊縣)과 헌양현(陽縣)을 관할하였다가 방어사로 고쳤다. 1397년(태조 6)에 진(鎭)을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진을 혁파하고 울산군으로 고쳤다. 1418년에는 염포(鹽浦)를 개항해 일본에 대한 문호를 열었으나,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왜관이 폐지되었다. 임진왜란중인 1598년(선조 31)에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로 승격되어 병마절도사가 부사를 겸하게 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다시 별도로 부사를 파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울산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울산군이 되었다. 고려 성종 때, 울산의 별칭을 학성(鶴城)이라고 하였다. 1906년에는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斗入地)인 외남면·웅상면이 양산군으로 이관된 대신 경주의 두입지인 외남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울산군의 21개면이 14개면으로 통합되었고, 언양군은 폐지되어 언양군의 6개면이 5개면으로 폐합, 울산군에 편입되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울산읍을 시로 승격하였다. 1995년에 울산시와 울산군을 통합하고, 1997년 울산광역시로 출범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울산이씨는
    1985년에는 총 1,128가구 4,433명,
    2000년에는 총 1,967가구 6,32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