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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국씨(潭陽鞠氏)
유래
  •  시조 : 국양(鞠樑)
    시조 국양(鞠樑)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 인종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공민왕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고려가 망하자, 아들 국유(鞠儒)와 함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키며 죽었다. 그후 국유(鞠樑儒)의 맏아들 국무(鞠樑珷)가 두 아우 국성(鞠樑珹)과 국황(鞠樑煌)을 데리고 담양으로 옮겨가 살면서 담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국민(鞠旻, 1611 辛亥生) : 문과(文科) 현종4년(1663) 식년시 병과(丙科)
 국경례(鞠經禮, 1428 戊申生) : 문과(文科) 문종1년(1451) 증광시 정과(丁科)
 국감(鞠○,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국태환(鞠台煥, 1846 丙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9년(1882) 식년시 삼등(三等)
 국민(鞠旻, 1631 辛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효종2년(1651) 식년시 이등(二等)
 국용진(鞠龍鎭, 1863 癸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2년(1885) 식년시 삼등(三等)
 국함(鞠涵, 15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5년(1613) 증광시 삼등(三等)
 국형손(鞠亨孫)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예종1년(1469) 증광시 삼등(三等)
 국침(鞠沈, 1577 丁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5년(1613) 증광시 삼등(三等)
 국흥렬(鞠興烈, 1860 庚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10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7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25世
      水변
      항(恒)○
      필(弼)○
      26世
      木변
      동(東)○
      효(孝)○
      27世
      火변
      ○렬(烈)
      ○은(恩)
      28世
      土변
      채(埰)○
      치(致)○
      29世
      金변
      ○현(鉉)
      ○진(鎭)
      30世
      水변
      한(漢)
      승(承)
      순(淳)
      섭(涉)
      31世
      木변
      동(東)
      근(根)
      주(柱)
      표(杓)
      32世
      火변
      ○환(煥)
      ○형(炯)
      ○병(炳)
      33世
      土변
      중(重)○
      규(圭)○
      34世
      金변
      ○호(鎬)
      ○록(錄)
      35世
      水변
      윤(潤)○
      승(承)○
      원(源)○
      36世
      木변
      ○상(相)
      ○병(柄)
      37世
      火변
      병(炳)○
      경(炅)○
      38世
      土변
      ○균(均)
      ○준(埈)
      39世
      金변
      용(鏞)○
      은(銀)○
      40世
      水변
      ○수(洙)
      ○택(澤)
      41世
      木변
      영(榮)○
      재(栽)○
      42世
      火변
      ○섭(燮)
      ○현(炫)
      43世
      土변
      재(在)○
      기(基)○
      44世
      金변
      ○수(銖)
      ○석(錫)
      45世
      水변
      태(泰)○
      영(永)○
      46世
      木변
      ○권(權)
      ○동(桐)
      47世
      火변
      형(炯)○
      휘(輝)○
      48世
      土변
      ○곤(坤)
      ○배(培)
      49世
      金변
      정(鉦)○
      명(銘)○
      50世
      水변
      ○호(浩)
      ○洪(洪)
      51世
      -
      52世
      -
      53世
      -
      54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6世孫은 25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담양
    담양(潭陽)은 전라남도 북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현재 담양은 조선시대의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와 창평현(昌平縣)을 1914년에 병합한 지역이다. 봉산면·무정면 이북지역은 대체로 옛 담양도호부 영역이고, 창평면·고서면·대덕면·남면·수북면 등 남부는 옛 창평현 지역에 해당한다. 백제의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추성군(秋成郡)으로 고쳤고,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담주도단련사(潭州都團練使)를 두었다가, 1018년(현종 9) 도단련사를 폐지하였고, 담양군으로 개편하여 나주(羅州)에 편입시켰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었고, 1391년(공양왕 3)에는 원율현(原栗縣: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 일대)을 병합하였다.
    1395년(태조 4) 군으로 승격하였고, 1399년(정종 1)에 부(府)로 다시 승격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담주에서 담양으로 개칭되어 도호부(都護府)가 되었으나, 1728년(영조 4)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담양군이 되어 남원부(南原府)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1905년(광무 9)에 담양부를 담양군으로 고쳤고, 1908년(순종 2)에 폐지된 옥과군 일부가 담양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창평군(昌平郡)이 폐지되어 담양군에 병합되었다. 1943년에 담양면이 담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976년에는 담양호와 광주호가 건설되어 용면 및 남면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담양국씨는
    1985년에는 총 3,586가구 14,872명,
    2000년에는 총 4,892가구 15,77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