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즐겨찾기 등록











 
가흥조씨(嘉興曺氏, 진도)
유래
  •  시조 : 조천령(曺千齡)
    시조 조천령(曺千齡)은 조국주(曹國柱)의 아들로 중종때 문과에 올라 장단부사(府使)를 지냈다.
인물
후손 조신준(曺臣俊, 1573~?)의 자는 공저(公著), 호는 영내(寧耐) 또는 무비(無閟)로 개성 출신이다. 시조 조천령(曺千齡)의 손자로 조욱(曺旭)의 아들이다.
그는 어려서 학업을 장인 차운로(車雲輅)에게 배웠고, 1606년(선조 39)에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인조초에 삼례찰방이 되었다. 이때 어사 장유(張維)가 호남을 안찰(按察)하여 왕에게 아뢰기를 "조신준이 청렴 봉직으로 역졸(驛卒)을 잘 보살펴, 그 정성에 사람들이 따르고 마축(馬畜)이 점점 늘어나게 되어 호남의 모든 역들이 또한 중하게 여겼습니다."라고 하였다. 관직이 장연부사에 이르렀다. 또, 일찍이 개성에 왜구가 침입하여 문헌이 회신(灰燼)당함을 보고는 개연하여 산천, 인물, 풍토, 사적을 기록한 송도잡기(松都雜記)를 찬하였고, 그밖의 저술로는 영내유고(寧耐遺稿)가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조신준(曺臣俊, 1573 癸酉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증광시 병과(丙科)
 조석(曺錫, 1634 甲戌生) : 문과(文科) 숙종8년(1682) 증광시 을과(乙科)
 조무훈(曺武勛, 1661 辛丑生) : 문과(文科) 숙종8년(1682) 춘당대시 을과(乙科)
 조신각(曺臣恪, 15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39년(1606) 증광시 이등(二等)
 조석(曺錫, 163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효종8년(1657) 식년시 삼등(三等)
 조신준(曺臣俊, 1573 癸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24년(1591) 식년시 이등(二等)
 조일(曺馹, 1573 癸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39년(1606) 증광시 일등(一等)
 조균(曺鈞)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7년(1552) 식년시 삼등(三等)
 조욱(曺旭, 1554 甲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21년(1588) 식년시 삼등(三等)
 조석(曺錫, 163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효종8년(1657)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10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생원진사시 7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진도
    가흥(嘉興)은 전라남도 진도군(珍島郡) 북쪽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백제 때에는 추산(抽山) 혹은 원산(猿山)이라 불리워졌다. 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하자 도산(徒山)으로 개칭되어 대방주(帶方州)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뇌산현(牢山縣)이 되어 무주(武州: 지금 光州)의 속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흥이라 고쳐 부르기 시작했고, 1018년(현종 9)에는 진도군(珍島郡)의 속현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명칭에 대한 기록이 실전되어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둔전리(屯田里)와 월가리 일대로 추정된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가흥조씨는
    1985년에는 총 4가구 30명,
    2000년에는 총 566가구 1,60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