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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昌寧曺氏)
유래
  •  시조 : 조계룡(曺繼龍)
    시조 조계룡(曺繼龍)은 신라 진평왕의 사위이다.
    그의 어머니는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禮香)으로 조계룡의 출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예향은 창녕현 고암촌(鼓岩村) 태생으로 그녀가 자라서 혼기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복중에 병이 생겨 화왕산 용지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리니 신기하게 병이 완쾌되었고 완쾌되었고 몸에는 태기가 있었다. 어느날 밤 꿈에 한 남자가 나타나 "이 아이의 아버지는 용의 아들 옥결이다. 잘 기르면 자라서 경상이 될 것이며 자손만대 번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후 달이 차서 진평왕 48년에 아들이 태어나니 용모가 준수하고 겨드랑이 밑에 조자가 붉게 씌여져 있었다. 이것을 본 학사는 이상히 여겨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왕도 신기하게 여기며 성은 조, 이름은 계룡 자는 인경(鱗卿)이라 특별히 하사하였다고 한다.
    뒤에 부마를 삼음으로써 창성부원군에 봉해 지고 벼슬이 보국대장군 상주국대도독 총지휘제군사(輔國大將軍 上柱國大都督 總指揮諸軍事) 금자광록대부 태자태사(金紫光祿大夫 太子太師)에 이르렀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본관을 창녕으로 하고있다.
인물
고려시대에 좌정승을 지낸 조익청(曺益淸)을 비롯하여 문하시중을 지낸 조민수(曺敏修), 조선시대에 부제학을 지낸 조상치(曺尙治), 공조판서를 지낸 조비형(曺備衡), 세종 때에 영의정을 지낸 조석문(曺錫文), 예조참판의 조효문(曺孝門), 대사헌의 조숙기(曺淑沂) 등 많은 관직자들을 배출하면서 번성하였다.
성종 때의 성리학의 대가로서 당시 사림간에 대학자로 추앙되었고, 김종직과 더불어 신진사류의 지도자였던 조위(曺偉)는 가문의 번영을 더하였다.
조신(曺伸)과 조한보(曺漢輔)는 시인과 학자로서 명성을 떨쳤고, 조계상(曺繼商)은 149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대사헌,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조광원(曺光遠)은 15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조식은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당시 유학계의 대학자로 추앙되었다. 그는 지리산에 은거하며 성리학을 연구, 여러 대가의 서적을 섭렵하여 독특한 학문을 이룩했으며 조정에서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퇴하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해방 후의 조만식(曺晩植. 1883~1950) 선생은 민족운동가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민족주의를 자기사상과 민족운동의 거울로 삼아 연정회(硏政會), 신간회(新幹會), 민립대학기성회(民立大學期成會) 등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시켰으며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조정(曺○, 1610 庚戌生) : 문과(文科) 인조26년(1648)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광익(曺光益) : 문과(文科) 선조9년(157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한영(曺漢英, 1608 戊申生) : 문과(文科) 인조15년(1637)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상치(曺尙治) : 문과(文科) 세종1년(1419) 식년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조하망(曺夏望, 1682 壬戌生) : 문과(文科) 영조12년(1736)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효창(曺孝昌, 1623 癸亥生) : 문과(文科) 숙종4년(1678)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탁(曺倬, 1552 壬子生) : 문과(文科) 선조32년(1599)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세당(曺世唐) : 문과(文科) 성종23년(1492) 식년시 병과(丙科)
 조우인(曺友仁, 1561 辛酉生) : 문과(文科) 선조38년(1605) 정시 병과(丙科)
 조명욱(曺明勖, 1572 壬申生) : 문과(文科) 선조38년(1605)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4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07명, 무과 37명, 생원진사시 20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전남 화순군 북면과 동면
    -전남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
    -경북 영천군 금호읍
    -경남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
    -경남 산청군 삼장면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창녕
    창녕(昌寧)은 경상남도 북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옛 창녕현(昌寧縣)과 영산현(靈山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본래 삼한시대에 불사국(不斯國), 이후의 빛벌가야(非火伽倻) 지역이었다. 신라에 의해 555년(신라 진흥왕 16) 하주(下州)가 설치되었고, 565년(진흥황 26) 비자화군(比自火郡) 또는 비사벌군(比斯伐郡)으로 개칭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 화왕군으로 바뀌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창녕군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밀성군(密城郡: 密陽)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창녕군에 속하기도 하였다. 1274년(원종 15)에 영산현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창녕현으로 되었고, 1631년(인조 9) 창녕현이 영산현에 합쳐졌다가 얼마 후에 복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창녕군·영산군이 되었으며, 1896년에 경상남도 창녕군·영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산군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1960년 창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창녕조씨는
    1985년에는 총 72,213가구 299,669명,
    2000년에는 총 105,282가구 338,22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