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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진씨(廣東陳氏)
유래
  •  시조 : 진린(陳璘)
    시조는 진린(陳璘, 천린, 1543년~1607년)은 중국 광동 지방에서 진본림의 네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자는 조작(朝爵)이고 호는 용애(龍厓)이다. 대대로 현유와 현관을 배출한 명문의 후손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 조선이 위태롭게 되자 명나라 어위도총관, 전군도독부도독(前軍都督府都督)으로서 수병 5천을 거느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강진군 고금도에서 이순신과 더불어 전공을 세워 광동백(廣東伯)에 봉해졌다.

    처음에는 이순신(李舜臣)과 불화가 있었지만 이순신이 세운 전공을 진린에게 양보하는 등 공을 세우도록 도움을 주자 점차 이순신에게 감복하여 진정으로 이순신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후 명나라 조정에 이순신의 전공을 상세하게 보고하여 만력제(萬曆帝)가 이순신에게 8가지 선물들을 보내도록 하는 데 일조를 했다. 전란이 끝난 후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사망한 뒤에는 태자소보(太子少保)에 추증되었다.

    그의 손자 진영소(陳泳溸)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를 지내다가 명나라가 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남경(난징)에서 배를 타고 남해의 장승포에 표착하였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인 진린(陳璘)이 공을 세웠던 강진 고금도로 옮겨 살다가 다시 해남현 내해리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는데 여기서부터 광동진씨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다.

    현재도 진린의 태생지인 광동성 소관시 옹원현(翁源縣) 주파진에 있는 문중과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해남의 황조마을 후손들은 2년에 한 번씩 한식날엔 본토 진씨들이 제사에 참석하며 혈육의 정을 나누고 있다.
인물
감국수위사 진영소(陳泳溸)의 아들 진석문(陳碩文)이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손자 진천룡(陳天龍)은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에 추증되어, 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을 지낸 진기환(陳幾瓛)과 함께 이름났고, 진계규와 진계조는 효행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세거지
- 전남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중국 광동
광동은 중국 남단에 위치하여 남지나해에 면한 광동성의 성도인 광주(廣州)의 통칭으로, 일찍이 해륙교통의 요충을 차지하여 화남에 있어서의 정치·경제·문화의 대중심지이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광동진씨는
1985년에는 총 271가구 1,177명,
2000년에는 총 715가구 2,32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