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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김씨(康津金氏)
유래
  •  시조 : 김원경(金原卿)
    시조 김원경(金原卿)은 고려시대에 사온서직장동정(司온署直長同正)을 지냈다.
    문헌이 전하지 않아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김원경은 도강김씨 태인사정공파(泰仁司正公派)의 파조이기도 하다.

    김영광(金英光)을 시조로 하는 설도 있다. 김영광은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네 아들 중 둘째 아들이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우정(金友正, 1607 丁未生) : 문과(文科) 인조26년(1648) 식년시 병과(丙科)
 김응길(金應吉, 1562 壬戌生) : 무과(武科) 선조17년(1584) 별시 병과(丙科)
 김복억(金福億, 1524 甲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6년(1573) 식년시 삼등(三等)
 김우정(金友正, 1607 丁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4년(1646) 식년시 이등(二等)
 김약허(金若虛)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8년(1513) 식년시 이등(二等)
 김약회(金若晦)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8년(1513) 식년시 삼등(三等)
 김면성(金勉成)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성종14년(1483) 식년시 삼등(三等)
 김관(金灌, 1575 乙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7년(1615) 식년시 삼등(三等)
 김희윤(金希尹)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연산군1년(1495) 증광시 삼등(三等)
 김약현(金若玄)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3년(1528)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9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강진
    강진(康津)은 전라남도 남서해안에 위치하며, 옛 도강현(道康縣)과 탐진현(耽津縣)이 합쳐진 지명이다. 도강현은 백제 때는 도무군(道武郡)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양무군(陽武郡)으로 불리었고, 940년(고려 태조 23) 도강현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 영암군(靈巖郡)에 속하게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탐진현은 백제의 동음현(冬音縣)으로 757년(경덕왕 16)에 탐진으로 고쳐서 양무군에 병합시켰고, 고려시대에는 영암에 속하였다가 뒤에 장흥(長興)의 속현이 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병마도절제사영(兵馬都節制使營)을 도강의 옛 관청소재지로 옮겨 설치하고 탐진과 통합하여 강진으로 개편하였다. 관할 관청을 탐진에 두었다가 1429년(세종 11)에 도강의 송계(松溪)로 옮겼고 1475년(성종 6)에 다시 탐진으로 돌아갔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진군이 되고 나주부(羅州府)가 관할하게 되었다. 1936년 강진면이 강진읍(康津邑)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진김씨는
    1985년에는 총 660가구 2,840명,
    2000년에는 총 1,296가구 4,30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