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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김씨(江華金氏)
유래
  • 강화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인 영분공(永芬公) 김명종(김鳴鍾)의 후손이면서도 계통(系統)을 달리하는 3파가 있다.

    개성파(開城派) : 김명종의 7세손 김성(金晟)이 고려 명종 때 참지정사(參知政事 : 중서문하성의 종2품 벼슬)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하음(河陰 : 강화의 옛 지명) 백(伯)에 봉해졌으므로, 그를 1세조로 한다.

    숙천파(肅川派) : 김명종의 18세손 김광(金光)이 조선 때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堤學 : 경적과 문서를 다루고 왕의 고문에 응하던 관청의 정3품 벼슬)을 거쳐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올랐다가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화(禍)를 입고 평안남도 숙천(肅川)에 유배되자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한다.

    의주파(義州派) : 김광의 증손자로 조선시대에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지낸 김송학(金松鶴)을 1세조로 한다.
인물
개성파의 인물로는 김장생(金長生)이 고려 때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 : 추밀원의 정3품 벼슬)를 지냈으며, 김원벽(金元壁)은 문하시중(門下侍中 : 문하성의 최고 벼슬, 종1품)과 찬성사(贊成事)를, 김성손(金性孫)은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상장군 김성손(金性孫)의 아들로 전라우도 수군우후(全羅右道水軍虞侯)를 지낸 김인보(金仁輔)와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감찰(監察)을 역임한 김의보(金義輔), 자인 현감(慈仁縣監) 김예보(金禮輔),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김지보(金智輔) 4형제가 유명했다.
그외 삭녕군수(朔寧郡守) 김경언(金慶彦), 서천군수(舒川郡守) 김경우(金慶禹), 통정대부(通政大夫) 김경준(金慶俊) 등이 뛰어났으며,
김성범(金成範)은 명천현감(明川縣監)과 수원판관(水原判官)을 거쳐 호조정랑(戶曹正郞)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우 김성헌(金成憲)을 서천군수(舒川郡守)를 거쳐 김해부사(金海府使)로 나갔다.

숙천파의 인물로는 파조(派祖)인 김광의 아들 김도순(金道淳)이 나라의 의식(儀式)을 맡아보던 관청인 통례원(通禮院)의 우통례(右通禮)를 지냈고, 그의 아들 김철손(金哲遜)은 지중추부사 (知中樞府事 : 중추원의 정2품 무관직 벼슬)를 역임하여, 부호군(副護軍) 김구정(金九鼎), 참의(參議 : 조선 때 육조에 속해있던 정3품 벼슬)를 지낸 김여전(金汝銓), 김인순(金仁淳), 김숭흘(金崇屹) 등과 함께 명성을 날렸다.

의주파(義州派)의 인물로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등용되었다가 연산군 때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화(禍)를 입은 김계후(金繼厚)와 정3품 당상관(堂上官) 무관(武官)의 관계인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른 김봉원(金鳳元)을 비롯하여 사과(司果) 김지정(金志禎), 부호군(副護軍) 김이순(金履淳) 등이 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대진(金大進,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여정(金汝錠, 1628 戊辰生) : 무과(武科) 효종3년(1652) 증광시 병과(丙科)
 김명호(金明浩,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식년시 을과(乙科)
 김시하(金時夏, 1629 己巳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김대보(金大寶, 1544 甲辰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김훤(金○, 1610 庚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4년(1646) 식년시 삼등(三等)
 김용(金鎔)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3년(1528)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7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5명, 생원진사시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개성파: 경기도 개성시, 개풍군 남면 율응리
    숙천파: 평남 안주군 운곡면 용천리
    족보발간
    을해보(乙亥譜): 1935년
    항렬자

    •  개성파
      22世
      학(學)
      23世
      영(泳)
      24世
      병(秉)
      25世
      열(烈)
      26世
      재(在)
      27世
      현(鉉)
      28世
      형(瀅)
      29世
      모(模)
      30世
      희(熙)
      31世
      배(培)
      32世
      종(鍾)
      33世
      연(淵)
      34世
      -
      35世
      -
      36世
      -
      37世
      -
      38世
      -
      39世
      -
      40世
      -
      41世
      -

       숙천파
      21世
      득(得)
      식(湜)
      22世
      학(學)
      영(英)
      23世
      희(熙)
      욱(煜)
      24世
      경(敬)
      채(埰)
      25世
      태(泰)
      현(鉉)
      26世
      -
      27世
      -
      28世
      -
      29世
      -
      30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2世孫은 21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
    강화(江華)는 옛 이름은 갑비고차(甲比古次)이며 고구려 때 혈구군(穴口郡), 신라 때는 해구군(海口郡)으로 개칭하고 한주(漢州: 廣州)에 예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 현재의 지명인 강화현으로 개편되었고, 1232년(고종 11) 몽골의 침입으로 고종이 천도하여 약 40년간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하였으며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618년(광해군 10) 부윤(府尹)으로 승격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유수부(留守府)로 승격되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도 인조가 몽진(蒙塵)을 하려고 하였다. 1906년(광무 10)에 강화군이 되었다. 1995년 경기도에 속하였다가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근세에 이르러서는 병인양요(丙寅洋擾, 1886)·신미양요(辛未洋擾, 1871)·운양호사건(雲揚號事件, 1875) 등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화김씨는
    1985년에는 총 1,343가구 5,727명,
    2000년에는 총 1,392가구 4,44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