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즐겨찾기 등록











 
개성김씨(開城金氏)
유래
  •  시조 : 김용주(金龍珠)
    시조 김용주(金龍珠, 시호는 충의)는 의성김씨 시조 김석(金錫)의 8세손 김공우(金公瑀)의 세째 아들이다.
    그는 1035년(고려 정종 1년)에 출생하여 1054년(문종 8년) 문과에 급제한 후 4대왕에 걸쳐 여러차려 여진정벌에 공을세워 추충공신(推忠功臣)으로 개성군(開城君)에 봉해지고 개성 부사(府使)와 평장사(平章事 : 내사 문하성의 정2품 벼슬)에 올라 그의 후손들이 의성김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개성으로 하였다.

    - 묘소는 개성 용종산 중봉에 있다.
인물
시조 김용주의 손자 정신공(貞愼公) 김준(金晙)이 고려 문종 때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예종 때 여진을 평정한 공으로 병부, 예부, 이부의 상서(尙書 : 육부에 속한 정3품 벼슬)를 지내고 평장사에 올랐으며, 그의 맏아들 김지선(金之宣)은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차남 김지경(金之慶)은 상서를 지냈고, 김지선의 맏아들 문원공(文元公) 김원(金源)은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김원의 손자 문민공(文敏公) 김남보(金南寶)가 영의정에 증직되었으며, 김현덕(金玄德)의 아들 김무(茂)는 좌찬성(左贊成)을 지냈다.
김응환(金應煥)은 당대의 이름난 화가로 상의원 별제(尙衣院別提)에 이르렀고 1788년(정조 12년) 왕명으로 금강산을 유력(遊歷)하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충장공(忠壯公) 김절(金節)은 일찍이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혀 경학(經學)에 밝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조헌을 따라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켜 보은, 공주, 청주 등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금산에 진을 치고 있던 왜적과 분전하다가 장렬하게 순절하여,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선조 임금이 시호와 함께 정려(旌閭)를 내려주어 그의 충절을 기렸다.
김여량(金汝亮)은 1603년(선조 36년)에 태어나 10세 때부터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1633년(인조 11년) 문과에 급제하여 봉상시 주부(奉常寺主簿) 겸 승문원 박사를 거쳐 1640년 음성 현감(陰城縣監)을 시작으로 외직에 나가 1671년(현종 12년)까지 32년 동안 해미, 인제, 재령, 창원, 영월 등 12읍의 군수, 현감, 부사 등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다섯 고을에 "청백송덕동비(淸白頌德銅碑)"가 세워졌으며, 1672년에는 대사간(大司諫 : 사간원의 정3품 으뜸 벼슬)에 오르고 1682년(숙종 8년) 승지(承旨)가 되어 3대에 걸쳐 가선대부(嘉善大夫 : 종2품하의 관계)의 영예를 추증받아, 현감을 지낸 김순룡(金舜龍)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자양(金自陽) : 문과(文科) 중종30년(1535) 별시3 을과(乙科)
 김지(金漬) : 문과(文科) 선조9년(1576) 중시 을과(乙科)
 김승훈(金承勳, 1834 甲午生) : 문과(文科) 고종6년(1869) 별시 을과(乙科)
 김지(金漬) : 문과(文科) 선조2년(1569) 별시 을과(乙科)
 김여량(金汝亮, 1603 癸卯生) : 문과(文科) 인조11년(1633) 식년시 병과(丙科)
 김명언(金明彦) : 문과(文科) 중종32년(1537) 식년시 병과(丙科)
 김면수(金冕洙, 1874 甲戌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식년시 병과(丙科)
 김한걸(金漢傑) : 문과(文科) 명종1년(1546) 식년시 병과(丙科)
 김선주(金善柱, 1833 癸巳生) : 문과(文科) 고종1년(1864) 증광시 병과(丙科)
 김경심(金慶深, 1531 辛卯生) : 문과(文科) 선조3년(1570) 식년시 을과(乙科)
등 모두 98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4명, 무과 13명, 생원진사시 30명, 역과 21명, 의과 5명, 음양과 12명, 율과 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24世
      ○환(煥)
      25世
      ○기(基)
      26世
      ○호(鎬)
      27世
      태(泰)○
      28世
      ○주(柱)
      29世
      충(忠)○
      30世
      ○규(圭)
      31世
      종(鐘)
      32世
      ○순(淳)
      33世
      동(東)○
      34世
      ○헌(憲)
      35世
      주(周)○
      36世
      ○진(鎭)
      37世
      영(永)○
      38世
      ○표(杓)
      39世
      병(炳)○
      40世
      ○균(均)
      41世
      ○석(錫)
      42世
      43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5世孫은 24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개성특급시
    개성(開城)은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현재 개성직할시가 되었다. 본래 고려의 수도였으며, 그 이전까지 송악군(松嶽郡)·송도(松都)·개경(開京)·부소갑(扶蘇岬)·동비홀(冬比忽)·촉막군(蜀莫郡) 등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부소갑(扶蘇岬)이라 했으며, 465년(백제 개로왕 11)에는 100년 동안 백제 영토였다. 555년(신라 진흥왕 16)에 신라가 점령한 이후 송악군(松嶽郡)으로 개칭되었고, 898년(효공왕 2)에 궁예가 잠시 태봉의 도읍으로 삼기도 하였다. 919년(고려 태조 2) 1월 수도를 철원(鐵原)에서 송악산(松嶽山) 남쪽으로 옮긴 후 개풍군과 송악을 합쳐 개주(開州)라 불렀고 5부를 설치하였다. 960년(광종 11)에는 개경(開京)으로, 995년(성종 14)에는 개성부(開城府)로 개칭하였다. 조선이 개국하여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1467년(세조 13)에 개성부로 경기도에 편입되어 개성부윤(開城府尹)이 부임해 오다가 1906년 개성군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시제(市制) 실시에 따라 개성시가 되었고, 1954년 10월 개풍군과 판문군(板門郡)이 황해북도에 편입되었다. 1955년 개성시와 황해북도 개풍군·판문군이 통합되어 개성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1961년 3월 황해북도 장풍군에 강원도 철원군 일부를 편입시키면서 개성직할시의 관할이 되었다. 2004년 1월 개성직할시를 황해북도 개성특급시(開城特級市)로 바꿨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개성김씨는
    1985년에는 총 4,568가구 18,777명,
    2000년에는 총 6,434가구 20,34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