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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최씨(江華崔氏)
유래
  •  시조 : 최익후(崔益厚)
    시조 최익후(崔益厚)는 최치원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상서우복야, 정당문학을 지내고 강화에 살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강화로 하였다.
인물
- 최용소(龍蘇) : 고려시대에 공조전서(工曹典書) 등을 지냈고, 조선 태조 때에는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에 건너가 포로로 잡혀간 본국인 570명을 데리고 나왔으며,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 都摠官)을 거쳐 명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가 태조로부터 '관서부자(關西夫子)'의 칭호를 받았다.
- 최순(淳) : 중종 때 대사간을 지냈다.
- 최시성(時聖), 최희립(希立) : 선조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웠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최지성(崔之聖, 1756 丙子生) : 문과(文科) 정조19년(1795)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최호(崔灝) : 문과(文科) 중종9년(1514) 명경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최린(崔潾) : 문과(文科) 성종9년(1478) 친시 병과(丙科)
 최호(崔濩, 1575 乙亥生) : 문과(文科) 광해군8년(1616) 중시 병과(丙科)
 최덕종(崔德種, 1476 丙申生) : 문과(文科) 중종36년(1541) 별시 병과(丙科)
 최신헌(崔身獻, 1590 庚寅生) : 문과(文科) 인조2년(1624) 식년시 병과(丙科)
 최순(崔淳, 1445 乙丑生) : 문과(文科) 중종2년(1507) 식년시 병과(丙科)
 최공망(崔公望, 1565 乙丑生) : 문과(文科) 광해군2년(1610) 식년시 병과(丙科)
 최명순(崔命順, 1517 丁丑生) : 문과(文科) 선조6년(1573) 식년시 을과(乙科)
 최시량(崔始量, 1587 丁亥生) : 문과(文科) 광해군10년(1618) 증광시 갑과(甲科)
등 모두 54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0명, 무과 6명, 생원진사시 28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30世
      섭(燮)
      31世
      재(在)
      32世
      흠(欽)
      33世
      언(彦)
      34世
      주(柱)
      35世
      형(炯)
      36世
      균(均)
      37世
      진(鎭)
      38世
      수(洙)
      39世
      상(相)
      40世
      환(煥)
      41世
      헌(憲)
      42世
      호(鎬)
      43世
      영(永)
      44世
      식(植)
      45世
      열(烈)
      46世
      달(達)
      47世
      용(鎔)
      48世
      한(漢)
      49世
      동(東)
      50世
      희(熙)
      51世
      진(?)
      52世
      선(善)
      53世
      종(淙)
      54世
      -
      55世
      -
      56世
      -
      57世
      -
      58世
      -
      59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1世孫은 30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
    강화(江華)는 옛 이름은 갑비고차(甲比古次)이며 고구려 때 혈구군(穴口郡), 신라 때는 해구군(海口郡)으로 개칭하고 한주(漢州: 廣州)에 예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 현재의 지명인 강화현으로 개편되었고, 1232년(고종 11) 몽골의 침입으로 고종이 천도하여 약 40년간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하였으며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618년(광해군 10) 부윤(府尹)으로 승격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유수부(留守府)로 승격되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도 인조가 몽진(蒙塵)을 하려고 하였다. 1906년(광무 10)에 강화군이 되었다. 1995년 경기도에 속하였다가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근세에 이르러서는 병인양요(丙寅洋擾, 1886)·신미양요(辛未洋擾, 1871)·운양호사건(雲揚號事件, 1875) 등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화최씨는
    1985년에는 총 2,905가구 12,553명,
    2000년에는 총 4,569가구 14,55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