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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김씨(公州金氏)
유래
  •  시조 : 김의손(金義孫)
    시조 김의손(金義孫, 예조판서)은 경순왕의 8세손 김지대(金之岱. 청도김씨의 시조)의 9세손이다. 그는 조선 세종 때 형조판서(刑曹判書)를 거쳐 돈령부사(敦寧府事)에 오른 김점(金漸)의 아들 3형제중 둘째로 , 어려서 사마시(司馬試 : 과거제도의 하나로 진사와 생원을 뽑는 소과)에 합격하고 참판(參判)을 거쳐 공주백(公州伯)에 봉해지자 여덟 아들 중 다섯 아들은 청도김씨를 이었고 세 아들이 북쪽으로 건너가 청도김씨에서 분관하여 공주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의손의 네째 아들 김용(金龍)은 공주파(公州派), 다섯째 아들 김구(金龜)는 평양파(平壤派), 여섯째 아들 김타는 곽산파(郭山派)의 파조가 되었다.
인물
김만의(金萬義)의 아들 김학기(金學起)가 조선 세조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지낸 후 1478년(성종 9년) 서거정(徐居正), 최숙정(崔淑精) 등과 함께 동문선(東文選 : 신라에서부터 조선 숙종 때까지의 시문을 모은 책) 편찬에 참여하고, 집의(執義)를 거쳐 대제학(大提學 : 홍문관, 예문관의 정2품 벼슬)에 올라 크게 명성을 날렸으며, 그의 동생 김학익(金學益)은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태좌(金台佐)는 선조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했고, 김천경(金天慶)은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김응참(金應參), 김응철(金應哲)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능한산성(綾漢山城)에서 장렬하게 순절하여 헌종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추증되고 곽산의 오열사에 제향되었다..
그외 김덕량(金德良)이 1546년(명조 1년) 문과에 급제하고 감찰(監察)과 군수(郡守)를 지냈으며, 부호군(副護軍) 김언충(金彦沖)은 군자감(軍資監) 김계로(金繼老), 부총관(副摠管) 김덕택(金德澤), 감찰(監察) 김변적(金卞赤)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조선 광해군때 김용(金龍)은 명청전쟁때 수명군대장(授明軍大將) 김응하의 좌익장으로서 우익장인 종질(從姪) 김무의와 함께 번양에 출전하여 우미채(牛尾寨)에서 장열하게 전사했고 후에 곽산의 오열사에 제향되었다.
한말에 우리민족의 한을 아름다운 시어로 노래한 소월 김정식(김소월)은 공주김씨 가문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학기(金學起, 1414 甲午生) : 문과(文科) 세조6년(1460) 평양별시 삼등(三等)
 김태좌(金台佐, 1541 辛丑生) : 문과(文科) 선조21년(1588) 식년시 병과(丙科)
 김경의(金敬義, 1826 丙戌生) : 문과(文科) 고종2년(1865) 식년시 병과(丙科)
 김성경(金成卿) : 문과(文科) 중종38년(1543) 식년시 병과(丙科)
 김현도(金鉉燾, 1802 壬戌生) : 문과(文科) 순조28년(1828) 식년시 병과(丙科)
 김현복(金鉉復, 1806 丙寅生) : 문과(文科) 순조25년(1825) 식년시 병과(丙科)
 김석남(金奭南, 1817 丁丑生) : 문과(文科) 철종3년(1852) 식년시 병과(丙科)
 김덕량(金德良) : 문과(文科) 명종1년(1546) 식년시 병과(丙科)
 김병도(金秉燾, 1853 癸丑生) : 문과(文科) 고종22년(1885) 식년시 병과(丙科)
 김택(金澤, 1596 丙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을과(乙科)
등 모두 3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9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16명, 율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 평남 대동군 고평면 하단리
    - 평북 정주군 안흥면 호현동
    항렬자
    • 16世
      경(敬)
      17世
      하(河)
      정(鼎)
      18世
      상(相)
      환(煥)
      19世
      도(燾)
      락(洛)
      20世
      정(珽)
      익(益)
      21世
      호(鎬)
      렬(烈)
      22世
      영(永)
      여(如)
      23世
      수(秀)
      철(喆)
      24世
      병(炳)
      기(基)
      25世
      규(圭)
      26世
      석(錫)
      27世
      연(淵)
      28世
      근(根)
      29世
      환(煥)
      30世
      준(埈)
      31世
      -
      32世
      -
      33世
      -
      34世
      -
      3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7世孫은 16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
    공주(公州)는 충청남도 동부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475년(백제 문주왕 1)에 위례성(慰禮城)으로부터 이곳에 수도를 옮기고, 538년(성왕 16) 사비성(泗沘城: 扶餘)으로 천도하기까지 약 64년간 백제의 수도로 문화의 꽃을 피운 중심지이다. 백제가 멸망한 660년 이후 당나라가 웅진도독부(熊津都督部)를 두었는데, 670년(문무왕 10)에 신라가 차지하여 신문왕 때 웅천주(熊川州)로 고쳤다가, 685년(신문왕 5)에 웅주(熊州)로, 757년(경덕왕 16)에 다시 웅주도독부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공주라 개칭하고 도호부를 두었다. 983년(성종 2) 목(牧)을 두었다가 993년(성종 12) 절도사(節度使)를 두고 안절군(安節郡)이라 칭하여 하남도(河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현종(顯宗) 때는 절도사를 폐지하고, 그 후 지주사(知州事)로 강등하였다가, 1341년(충혜왕 복위 2) 목으로 승격되었다. 세종 때 진(鎭)을 두었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가 설치되면서 공주군이 되었고, 1896년 충청남도 공주군이 되었다. 1931년 축소되었던 공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6년에 다시 공주시(公州市)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에는 공주군과 통합하여 공주시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공주김씨는
    1985년에는 총 1,814가구 7,542명,
    2000년에는 총 2,401가구 7,58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