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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김씨(光陽金氏)
유래
  •  시조 : 김황원(金黃元)
    시조 김황원(金黃元)은 김흥광(金興光. 광산김씨 시조)의 9세손으로 고려의 명신이며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호는 문간(文簡)이다.
    1045년(고려 정종 11년)에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문장이 뛰어나 고시(古詩)로 명성을 떨쳤으며, 청렴강직하였다고 한다. 특히 그는 한림원(翰林院 : 임금의 명령을 받아 문서를 꾸미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에 있을 때 요(遼)나라의 사신을 맞이하여 사신을 시로 크게 감동시켰다고 하며, 그를 시기한 재상 이자위(李子威)의 모함으로 한때 파직되기도 하였으나 후에 선종에게 이름이 알려져 좌습유(左拾遺 : 중서문하성의 종6품 낭사 벼슬), 지제고(知制誥)에 등용되고 경산부사(京山府使)로 나가 많은 치적(治績)을 쌓았다.
    예종 때 와서는 중서사인(中書舍人 : 중서문하성 종4품 벼슬)이 되어 사신으로 요나라에 가는 길에 북부지방의 대기근으로 백성이 굶어 죽는 참상을 목격하고 주(州)와 군(郡)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하였으며, 귀국 후 예부시랑(禮部侍郞)과 국자제주(國子祭酒),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지내고 첨서추밀원사(僉書樞密院事 : 왕명의 출납, 숙위, 군기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추밀원의 정3품 벼슬)로 치사하였다.
    후손들이 그가 전에 살던 지방인 광양을 본관으로 하였다.
인물
김황원의 아들 김희석(金希奭)이 고려 시대에 원외랑(員外郞 : 상서성의 정6품 벼슬)을 지냈으며, 손자 김영윤(金永倫)은 판삼사사(判三司事), 증손자 김소는 판도좌랑(版圖佐郞)을 각각 역임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우성(金祐聖, 1650 庚寅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김신(金晨, 1611 辛亥生) : 무과(武科) 인조22년(1644) 별시 병과(丙科)
 김용학(金龍鶴,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진학(金進鶴,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우경(金禹卿)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4년(1549)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5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4명, 생원진사시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광양
    광양(光陽)은 전라남도 남동부에 위치하며 삼국시대에 마한에 속했으며, 346년(백제 근초고왕) 무렵 부터는 마로현(馬老縣)이라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희양현(晞陽縣)으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광양현(光陽縣)으로 고치고 승평군(昇平郡)의 관할로 두었다. 983년(성종 2) 승주목(昇州牧: 順天)의 영현이 되었다가 995년 해양도(海陽道)가 편제되어 승주(昇州) 소속이 되었고, 1108년(예종 3)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광양현이 되어 현감을 두었고, 1598년(선조 31)에 순천도호부에 임시로 편입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광양군이 되었고, 1949년 광양면이 광양읍으로 승격하였다. 1989년 광양출장소가 동광양시로 분리 승격되었고, 1995년 광양군과 동광양시가 통합하여 광양시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광양김씨는
    1985년에는 총 143가구 632명,
    2000년에는 총 540가구 1,98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