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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김씨(樂安金氏)
유래
  •  시조 : 김수징(金粹澄)
    시조 김수징(金粹澄)은 신라 경순왕의 세째 아들 김명종의 12세손이다. 고려 명종 때 감무(監務 : 현령을 둘 수 없는 작은 현의 감독관)를 지내고 1172년(고려 명종 2년) 서북계의 반란군을 평정한 공으로 정난공신(定難功臣)으로 낙안군(落安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경주김씨에서 분관하여 낙안을 본관으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씨족통보, 증보문헌비고, 청구씨보, 한국성씨대관 등의 과거 문헌에는 시조를 김광습(金光襲)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모든 낙안김씨의 족보에는 김광습은 김수징의 아들로 되어 있다.

    - 묘소는 없어지고 전북 고창군 성내면 당덕리 암동에 낙흥단을 세우고 음력 2월 13일에 제사지낸다.
인물
김수징의 둘째 아들 김광습(金光襲)은 고려 명종과 신종 왕대에 걸쳐 벼슬을 하여 금오위 대장군(金吾衛大將軍 : 군제인 육위의 종3품 벼슬), 검상(檢詳), 사인(舍人), 검교대장(檢校大將) 등을 지내고 좌승상(左承相)에 이르렀으며, 그의 아들 김윤견(金允堅)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내고 상장군이 되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조선 태종 때 보문각(補文閣)의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김인관(金仁琯)과 전라 수군절제사(全羅水軍節制使) 김빈길이 유명했으며, 김화(金華)는 세종 때 이조판서에 올랐으나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만 전념했다.

성종 때의 공조참판(工曹參判) 김정익(金廷益)은 충직하고 청렴하기로 유명했으며, 김은창(金殷昌)은 이천부사(利川府使)를 거쳐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올라,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지낸 김여광(金麗光), 영천군수(永川郡守)를 지낸 김여현(金麗顯),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낸 김사남(金士男), 장연부사(長淵府使)를 지낸 김덕리(金德利), 남양부사(南陽府使)를 지낸 김여기(金汝器), 양성현감(陽城縣監)을 지낸 김시문(金時文)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석겸(金碩謙, 1573 癸酉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응한(金應漢,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응진(金應進,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양서(金良恕, 1541 辛丑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김철보(金鐵寶)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9년(1534) 식년시 삼등(三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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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흥(金文興, 1696 丙子生) : 역과(譯科) 영조14년(1738) 식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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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대(金有大, 1698 戊寅生) : 역과(譯科) 숙종43년(1717) 식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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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현(金重鉉, 1697 丁丑生) : 역과(譯科) 숙종45년(1719) 증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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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길(金宗吉, 1755 乙亥生) : 역과(譯科) 영조50년(1774) 증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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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경(金惟鏡, 1644 甲申生) : 역과(譯科) 숙종8년(1682) 증광시 ()
등 모두 8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4명, 생원진사시 1명, 역과 11명, 의과 9명, 음양과 14명, 율과 8명, 주학 34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26世
      영(永)
      준(準)
      27世
      ○식(植)
      ○정(楨)
      28世
      병(炳)○
      황(煌)○
      29世
      ○기(基)
      ○배(培)
      30世
      종(鍾)○
      진(鎭)○
      31世
      ○수(洙)
      ○원(沅)
      32世
      동(東)○
      권(權)○
      33世
      ○열(烈)
      ○환(煥)
      34世
      규(圭)○
      재(載)○
      35世
      ○현(鉉)
      ○옥(鈺)
      36世
      호(浩)○
      원(源)○
      37世
      ○상(相)
      ○표(杓)
      38世
      39世
      -
      40世
      -
      41世
      -
      42世
      -
      43世
      -
      44世
      -
      4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7世孫은 26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
    낙안(樂安)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樂安面)·외서면(外西面)과 보성군(寶城郡) 벌교읍(筏橋邑) 일대를 통칭하던 지명이다. 백제 때에는 분사군(分沙郡: 分嵯郡·夫沙郡·波知成)이었다.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분차주(分嵯州)를 설치하고 귀차(貴且)·수원(首原)·고서(皐西)·군지(軍支)를 영현으로 두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분령군(分嶺郡)이라 했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낙안군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 나주(羅州)의 속군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낙안현으로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으며, 후에 군으로 승격하였다. 부사(浮槎)·낙천(洛川)이라고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낙안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남도 낙안군이 되었다. 1908년(융희 2)에 군면 폐합이 실시되어 낙안군이 폐지되고, 내서·외서·동상·동하·초상·초하·읍내 등의 면은 순천군으로, 남상·남하·고상·고하 등의 면은 보성군으로 나누어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낙안김씨는
    1985년에는 총 1,141가구 4,299명,
    2000년에는 총 1,076가구 3,47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