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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김씨(南陽金氏)
유래
  •  시조 : 김적(金頔)
    시조 김적(金頔)은 가락국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가 고려 의종 때 나라에 변란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남양의 산골짜기에 이사하여 살았다. 그래서 선대에 관한 기록이 없고 후손 김약해(金躍海)가 조선 태조를 도와 공을 세워 남양백에 봉해지고 정착하여 살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남양으로 하였다.

    - 묘소는 전북 정주시 용계면 은봉리에 있다.
인물
김약해(金躍海)의 아들 김계(金桂)는 1436년(세종 18)에 출생하여 성종(成宗) 때 성균진사(成均進士)가 되었으나,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史禍)로 인하여 김일손(金馹孫)을 비롯한 신진사류(新進士類)가 류자광(柳子光) 중심의 훈구파에 의하여 화(禍)를 입을 때 연루되어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 땅에 유배되어 후손들이 그 곳에서 정착세거(定着世居)하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김계(金桂)의 현손(玄孫) 김장유(金長孺)가 소위장군(昭威將軍, 정4품 무관의 품계)에 올랐으며, 숙부(叔父)인 김종례(金從禮)는 전적(典籍)을 역임하여 아들 김계정(金繼貞, 선략장군을 지냄)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한편 이조 판서(吏曹判書) 김수연(金秀淵)과 어모장군(禦侮將軍) 김승업(金承業)이 유명했으며, 김덕연(金德淵)의 아들 남신은 1696년(숙종 22)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역임했다. 그외 군자감정(軍資監正) 철원(哲元)과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낸 성곤(聖坤)·진택(振澤)·정징(正徵)·종일(宗一)·태서(兌西) 등이 뛰어났고, 회직(懷稷)은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여 가문을 대표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남신(金南○, 1666 丙午生) : 문과(文科) 숙종22년(1696) 식년시 병과(丙科)
 김용언(金龍彦, 1763 癸未生) : 문과(文科) 순조34년(1834) 식년시 병과(丙科)
 김중길(金中吉, 1595 乙未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몽린(金夢麟, 1602 壬寅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대국(金大國, 1588 戊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응세(金應世, 1583 癸未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곤복(金昆福,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막남(金莫男, 1609 己酉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경운(金京云,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덕립(金德立,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4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9명, 생원진사시 2명, 역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16世
      鉉(현)
      鎰(일)
      17世
      濬(준)
      源(원)
      18世
      稷(직)
      19世
      燦(찬)
      燾(도)
      20世
      垕(후)
      均(균)
      21世
      鍾(종)
      鎭(진)
      22世
      河(하)
      洛(락)
      23世
      相(상)
      載(재)
      24世
      薰(훈)
      熙(희)
      25世
      基(기)
      奎(규)
      26世
      錫(석)
      鎬(호)
      27世
      潤(윤)
      濟(제)
      28世
      杓(표)
      植(식)
      29世
      炳(병)
      文(문)
      30世
      圭(규)
      培(배)
      31世
      鍊(련)
      銖(수)
      32世
      -
      33世
      -
      34世
      -
      3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7世孫은 16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수원
    남양(南陽)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시(水原市)와 화성군(華城郡)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에 당항성(唐項城)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당은군(唐恩郡)으로 고치고, 쌍부(雙阜)·정송(貞松)·안양(安陽) 등을 관할하였다. 822년(헌덕왕 14)에 수성군(水城郡: 水原)에 병합되었으나 829년(흥덕왕 4)에 당성진을 설치하면서 분리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군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수주(水州: 水原)의 관할에 들었고, 후에 인주(仁州: 仁川)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독립하여 감무를 두었고 재양현(載陽縣: 安陽縣)을 관할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익주(益州)로, 후에 강령도호부(江寧都護府)로, 다시 익주목(益州牧)으로 승격되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남양부으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남양도호부가 되었다가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792년(정조 16)에 수원진을 남양으로 옮겨 설치하였고 별호는 영제(寧堤)·과포(戈浦)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천부 남양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기도 남양군이 되었다가 1906년 월경지 정리에 따라 수원의 두입지(斗入地)인 팔탄·분향·장안·초장·압정·오정 등 6개면이 남양군에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양군이 폐지되어 수원군에 병합되었다. 이때 일부 면이 은덕·쌍수·마도·송산·서신·비봉면으로 통합되고 수원군에서 편입했던 6개면은 팔탄면·장안면·우정면으로 통합되어 다시 수원군에 편입되었다. 1931년 수원면이 수원읍으로 승격되고, 1949년 수원군을 분할하여 수원시로 승격시키고 수원군을 화성군으로 개칭하였다. 1963년 주변의 20개 리를 편입하였으며, 1967년 6월 서울시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시로 이전되었다. 1983년 전국행정구역 조정으로 용인시 수지면(水枝面) 하리(下里)·이의리(二儀里)의 2개 리가 편입되었다. 1987년 화성군 매송면(梅松面) 금곡리(金谷里)·호매실리(好梅實里)가 편입되었다. 1988년 7월 장안구·권선구 2개 구가 신설되었고, 1993년 팔달구가 신설되었다. 1994년 권선구에 입북동·당수동을, 팔달구에 영통동이 각각 신설되었다. 1995년 권선구 곡선동이 권선동과 곡선동으로 나뉘고, 화성군 태안읍 신리와 망포리 일원이 팔달구 매탄3동에 편입되었다. 2003년 11월 영통구가 신설되었다. 2004년 현재 4구 4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양김씨는
    1985년에는 총 652가구 2,721명,
    2000년에는 총 745가구 2,40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