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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김씨(南原金氏)
유래
  •  시조 : 김사지
    시조 김사지는 경순왕의 제8자 김추(일선군)의 8세손 중의 제3자이다.
    본관을 남원으로 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후손들이 평안북도 초산군 송면 및 함경남도 고원군 등지에 세거하다가 동란 때 월남하면서 모든 문헌을 보존하지 못하여 중간계대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인물
조선시대에 조방장을 지낸 김경노, 헌종 때 문과에 급제한 김기욱으로 이어져 왔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명수(金命水, 1600 庚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막보(金莫福, 1607 丁未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휘(金徽)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끝선(金唜善, 1580 庚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이척(金以倜, 1650 庚寅生) : 무과(武科) 숙종12년(1686) 별시 병과(丙科)
 김대남(金大男,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득길(金得吉, 1610 庚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유수(金裕秀, 1869 己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김이규(金履珪, 1843 癸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7년(1870) 식년시 삼등(三等)
 김낙룡(金洛龍, 1854 甲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10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7명, 생원진사시 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 평안북도 초산군 송면 송정동
    -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주당리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
    남원(南原)은 오늘날 전라북도 남원시 일원의 지명으로 16년(백제 온조왕 34) 무렵에 고룡군(古龍郡)이라 불렀다가 196년(초고왕 31)에 백제의 5방 중 대방군(帶方郡)이 되었다. 685년(신라 신문왕 5)에 9주 5소경의 하나로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5현을 관할하는 남원부로 개편되었다. 1018년(현종 9) 지부사(知府事)로 고쳤다. 1310년(충선왕 2) 대방군(帶方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360년(공민왕 9) 부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남원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57년(세조 3)에는 남원진영을 두었고, 1654년(효종 5)에는 전라좌영을 설치하였다. 1740년(영조 16) 일신현으로 강등되었으나 이듬해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라 4부 중 하나인 남원관찰부가 되었다가 1910년 남원 48방을 22개면으로 통폐합하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에는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남원시와 남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남원군이 남원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원김씨는
    1985년에는 총 188가구 802명,
    2000년에는 총 528가구 1,72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