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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김씨(南平金氏)
유래
  •  시조 : 김창협
    시조 김창협은 경순왕의 제4자 김은열의 후손인 양주김씨 시조 김원보의 후손으로 전할 뿐 문헌이 없어 본관의 유래와 세계를 알 수 없다. 그리고 남평군 김기홍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전한다.
인물
김규진은 조선말기의 서화가로 이름이 높다. 자는 용삼, 호는 해강을 비롯한 10여가지로 시종원부경 김기범의 아들이다. 8세에 외숙 이소남에게 글씨를 배우고 18세에는 청나라에 유학하여 서화의 명적을 연구. 10여년 만에 귀국했다. 글씨는 행서 초서 등 모두에 능하여 묘경을 이루었으며, 그림은 산 수 조를 잘 그렸고, 특히 난죽이 절묘했다. 그는 왕세자의 사부가 되어 세자에게 서법을 가르쳤고, 서화연구회를 창설, 서화 연구에 공헌했다. 후에 조선미술전람회서예부 심사위원을 지내며 때때로 경향각지에 전람회를 개최하여 예술 발전에 공이 컸다. 벼슬은 시종관을 지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질(金質)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3년(1528) 식년시 삼등(三等)
 김용현(金龍鉉, 1845 乙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0년(1873) 식년시 일등(一等)
* 모두 2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 1930년도 국세조사통계에 의하면 후손들이 평남 평원군 공덕면 괴전리에 35호가 살고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
    남평(南平)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남평·산포(山浦)·금천(金川)·봉황면(鳳凰面) 등 동부지역 일대의 옛 지명이다. 백제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 지역이었는데,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한 뒤에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을 두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현웅현(玄雄縣)으로 고쳐 무주(武州: 光州)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남평군(南平郡: 永平郡)으로 바꾸었고, 1018년(현종 9)에 나주목의 관할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두어 독립했으나, 1390년(공양왕 2) 화순감무가 겸하여 통치하였다가 1399년에는 다시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으로 남평현이 되었다. 오산(烏山)으로도 불리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평군으로 나주부 소속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의 관할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평군이 폐지되어 나주군(羅州郡)에 통합되고 1995년 통합 나주시가 되면서 나주시 남평면(南平面)이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평김씨는
    1985년에는 총 70가구 339명,
    2000년에는 총 171가구 58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