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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김씨(達城金氏)
유래
  •  시조 : 김담(金淡)
    신라김씨분파연원도(新羅金氏分派淵源圖)에 의하면 시조 김담(金淡)은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진사를 지냈다고 만 되어 있어 여타 사적이나 연대에 대해서는 상고할 수 없다. 또 전후 세계와 본관을 달성으로 하게 된 연유도 밝힐 수 없다.
세거지
- 1930년도 국세조사 자료에 나타나지 않아 후손들의 집성촌도 알 수 없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
달성(達城)은 현재 대구광역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별호로 삼한시대에는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구벌(達句伐)이라 불렀다. 6세기 경에는 신라에 귀속되었다. 군현제가 정비되면서 초기에 위화군(喟火郡: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일대)과 달구화현(達丘火縣: 達句伐)으로 나뉘어 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위화군은 대구현(大丘縣)으로, 다사지현은 하빈현(河濱縣), 설화현은 화원현(花園縣), 추량화현은 현효현(玄驍縣), 치성화현은 해안현(海安縣)으로 각각 바뀌었다. 그리고 하빈현·화원현은 수창군(壽昌郡), 해안현은 장산군(獐山郡: 慶山), 현효현은 화왕군(昌寧)에 속하게 되었다. 현효현은 544년(진흥왕 5)에 삼량화정이 설치된 군사적 중심지이다. 940년(태조 23) 수창군은 수성군(壽城郡)으로 개칭하고 1018년(현종 9)에 경주의 관할이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했다. 대구현은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 星州)의 속현이 되었으나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둠으로써 승격하기 시작했다. 1394년(태조 3)에 대구현은 수성현과 해안현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419년(세종 1)에 군으로, 1466년(세조 12)에 도호부로 승격했다. 1601년(선조 34) 경상도 관찰사영이 설치되면서 경상도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현종 때에는 풍각현(豊角縣)을, 숙종 때에는 화원현을 다시 합병하여 면적을 확대함은 물론 교통의 요지를 확보했다. 영조 때에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변경하였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대구군이 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대구부의 시가지 부분인 대구면이 대구부로 독립하고 옛 대구부의 일부와 현풍군의 일부가 통폐합되어 달성군이 되었다. 1938년 달성군의 일부가 대구부로 편입되었고, 1949년에는 대구시로 개편되었다. 1981년에 대구직할시로 승격되었고, 1988년에 달서구가 신설되었다. 1995년 대구광역시로 개편하면서 달성군을 통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달성김씨는
1985년에는 총 79가구 439명,
2000년에는 총 405가구 1,28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