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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김씨(南海金氏, 당악)
유래
  •  시조 : 김태진(金泰辰)
    시조 김태진(金泰辰)은 조선 명종(明宗) 때 장예원(掌隷院) 직장(直長)을 지냈다. 김태진이 남해(南海)에 살았기에 후손들은 남해를 본관으로 하고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이건(金以乾, 1658 戊戌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김욱(金郁, 1539 己亥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을과(乙科)
 김석현(金碩賢, 1622 壬戌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길(金佶,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의천(金義天, 1653 癸巳生) : 무과(武科) 숙종13년(1687) 알성시 병과(丙科)
 김대기(金大器, 1528 戊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6년(1561) 식년시 삼등(三等)
 김규수(金奎壽, 1642 壬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8년(1682) 증광시 삼등(三等)
 김영필(金永弼, 18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8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5명, 생원진사시 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
    남해(南海)는 현재 경상남도 남해군 지역의 옛 이름이다. 690년(신라 신문왕 10)에는 전야산군(轉也山郡: 轉伊山郡)으로, 757년(경덕왕 16)에는 남해군으로 이름을 바꾸어 강주(康州: 晉州)에 속했고, 난포현(蘭浦縣: 內浦縣)과 평산현(平山縣: 平西山縣, 西平縣)을 관할하였다. 1018년(현종 9)에 남해현으로 강등되었고, 1358년(공민왕 7) 왜구의 침략이 극심하여 행정관서를 진주목의 대야천부곡(大也川部曲: 하동군 북천면)으로 임시로 옮겼다. 1404년(태종 4)에 진주로 이관한 지 46년 만에 남해현을 복구하고 남해읍성을 구축하였다. 1413년(태종 13) 하동과 병합되어 하남현(河南縣)이라 칭하였다가 1414년 하동현이 독립하면서 진주 금양부곡과 합하여 해양현(海陽縣)이라 불렀으나 1417년 남해현으로 환원되었다. 1419년(세종 1)에는 다시 곤명현(昆明縣)과 합하여 곤남군(昆南郡)이 되었다가 1437년(세종 19) 복구되었다. 별호는 전산(轉山)·화전(化田)·윤산(輪山)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의 남해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남도에 편입되었다. 1906년 창선도(昌善島)가 면으로 승격하여 남해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와 남해대교가 개통되어 육지화되었다. 1979년 남해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해김씨는
    1985년에는 총 1,111가구 4,291명,
    2000년에는 총 1,743가구 5,46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