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즐겨찾기 등록











 
대구김씨(大邱金氏)
유래
  •  시조 : 김달(金達)
    시조 김달(金達)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후손인 김방경의 넷째 아들김론(金惀)의 증손자이다. 김달은 병조참의를 지내고 경북 대구 도화촌에 살았었으나 조사의(趙思義)의 난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다고 태종3년에 함경도 길주로 유배되었다. 그 후 그후 장남김려연(金麗淵)의 가족이 대구에서 길주로 이주하여 살면서 고향인 대구를 본관으로 하였다.
    그후 시조 김달의 작은 아들 (金富亨)의 손자들이 80년 뒤 연산군 때 대구에서 북으로 이주하여 함경도 명천과 평안도 용천, 의주 등에 살면서, 평안도에 살던 계통은 김호견(金浩堅)을 중시조(1세)로 평안도계(용만파)로하였고, 김대성(호연의 8대손)을 중시조(1세)로 하는 등 3계파가 있다.
    - 함경도계(길주파) 1대 김달시조
    - 함경도계(서포파) 3대 김호연 중시조, 김대성 11대 중시조
    - 평안도계(용만파) 3대 김호견 중시조
인물
김득일(金得鎰) : 조선 시대에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김영홍(金永弘) : 조선 시대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취규(金就奎) : 조선 시대에 병조참판(兵曹參判)를 지냈다.
김응회(金應晦) : 조선 시대에 현감(縣監)에 올랐다.
김연석(金連碩) : 조선 시대에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냈다.
김수택(金壽澤) : 조선 시대에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김화룡(金化龍) : 조선 시대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진흥(金振興) : 조선 시대에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김의묵(金宜黙) : 조선 시대에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필선(金必宣, 1762 壬午生) : 문과(文科) 정조13년(1789) 식년시 병과(丙科)
 김대현(金大鉉, 1815 乙亥生) : 문과(文科) 헌종9년(1843) 식년시 병과(丙科)
 김정이(金鼎二, 1649 己丑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김중정(金重鼎, 1646 丙戌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김성필(金聖弼, 1636 丙子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정시 병과(丙科)
 김종남(金從男, 1591 辛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치만(金致萬, 1665 乙巳生) : 무과(武科) 숙종21년(1695) 별시 병과(丙科)
 김침(金沈)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35년(1540) 식년시 삼등(三等)
 김취한(金就漢, 1702 壬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1년(1735) 증광시 이등(二等)
 김호의(金好義, 1597 丁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8년(1630)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6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15世
      홍(弘)
      석(碩)
      16世
      시(時)
      지(志)
      17世
      기(基)
      응(應)
      18世
      제(湜)
      준(濬)
      회(會)
      19世
      상(尙)
      20世
      곤(坤)
      일(一)
      21世
      성(聖)
      도(道)
      22世
      23世
      -
      24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6世孫은 15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대구광역시
    대구(大邱)는 현재 대구광역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별호로 삼한시대에는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구벌(達句伐)이라 불렀다. 6세기 경에는 신라에 귀속되었다. 군현제가 정비되면서 초기에 위화군(喟火郡: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일대)과 달구화현(達丘火縣: 達句伐)으로 나뉘어 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위화군은 대구현(大丘縣)으로, 다사지현은 하빈현(河濱縣), 설화현은 화원현(花園縣), 추량화현은 현효현(玄驍縣), 치성화현은 해안현(海安縣)으로 각각 바뀌었다. 그리고 하빈현·화원현은 수창군(壽昌郡), 해안현은 장산군(獐山郡: 慶山), 현효현은 화왕군(昌寧)에 속하게 되었다. 현효현은 544년(진흥왕 5)에 삼량화정이 설치된 군사적 중심지이다. 940년(태조 23) 수창군은 수성군(壽城郡)으로 개칭하고 1018년(현종 9)에 경주의 관할이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했다. 대구현은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 星州)의 속현이 되었으나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둠으로써 승격하기 시작했다. 1394년(태조 3)에 대구현은 수성현과 해안현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419년(세종 1)에 군으로, 1466년(세조 12)에 도호부로 승격했다. 1601년(선조 34) 경상도 관찰사영이 설치되면서 경상도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현종 때에는 풍각현(豊角縣)을, 숙종 때에는 화원현을 다시 합병하여 면적을 확대함은 물론 교통의 요지를 확보했다. 영조 때에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변경하였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대구군이 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대구부의 시가지 부분인 대구면이 대구부로 독립하고 옛 대구부의 일부와 현풍군의 일부가 통폐합되어 달성군이 되었다. 1938년 달성군의 일부가 대구부로 편입되었고, 1949년에는 대구시로 개편되었다. 1981년에 대구직할시로 승격되었고, 1988년에 달서구가 신설되었다. 1995년 대구광역시로 개편하면서 달성군을 통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대구김씨는
    1985년에는 총 548가구 2,355명,
    2000년에는 총 1,030가구 2,98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