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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김씨(密陽金氏)
유래
  •  시조 : 김승조(金承祖)
    시조 김승조(金承祖, 호는 홍의제)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의 13세손이다. 그는 고려때에 사직을 지내고 1272년(원종 13년) 김방경의 막하장이되어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고 밀성(밀양)군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다.

    - 묘소는 경기도 개성시 용산동에 있으며 매년 3월 20일 송정사에서 제향한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태일(金台一, 1733 癸丑生) : 문과(文科) 영조32년(1756) 식년시 병과(丙科)
 김성진(金成珍, 1746 丙寅生) : 문과(文科) 정조13년(1789) 식년시 병과(丙科)
 김종환(金宗瑍, 1814 甲戌生) : 문과(文科) 헌종12년(1846) 식년시 병과(丙科)
 김봉욱(金鳳郁, 1728 戊申生) : 문과(文科) 영조47년(1771) 식년시 병과(丙科)
 김이남(金二男, 1611 辛亥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상명(金尙鳴)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천립(金天立,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큰보(金大福,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진업(金進業)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시명(金始鳴)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4명, 무과 27명, 의과 1명, 음양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23世
      재(在)
      24世
      석(錫)
      25世
      홍(洪)
      26世
      식(植)
      27世
      찬(燦)
      28世
      배(培)
      29世
      기(基)
      30世
      석(錫)
      31世
      영(永)
      32世
      동(東)
      33世
      열(烈)
      34世
      기(基)
      35世
      옥(鈺)
      36世
      수(洙)
      37世
      근(根)
      38世
      형(炯)
      39世
      원(遠)
      40世
      규(圭)
      41世
      -
      42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4世孫은 23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
    밀양(密陽)은 지금의 밀양시 일원에 있던 지명으로 삼한시대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했으며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이 있었다고 한다.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 밀벌 또는 미리벌)이 설치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6)에는 밀주(密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되었다. 1275년(충렬왕 1)에는 군민의 모반 사건으로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계림부(鷄林府: 慶州)에 편입되었다가 후에 현으로 승격하였다. 1285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로 승격하였다. 조선 1415년(태종 15)에 밀양도호부가 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8년에는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밀양읍으로, 1989년 시로 승격하여 독립하였다. 1995년 밀양군이 밀양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밀양김씨는
    1985년에는 총 1,929가구 8,888명,
    2000년에는 총 3,009가구 9,95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