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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김씨(富平金氏)
유래
  •  시조 : 김을진(金乙軫)
    시조 김을진(金乙軫)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18세손이다. 그러나 문헌이 전하지 않아 중간계대는 밝히지 못하고, 조선 중종 때 통훈대부(通訓大夫), 어모장군(禦侮將軍), 충좌위 부호군(忠佐衛副護軍)에 오른 김환(金丸)을 1세조로 하고 있다.

    김환(金丸)의 아들 5형제 중 셋째 김세삼(金世參)과 넷째 김세진(金世軫)의 후대에서 관동파(關東派)와 호서파(湖西派)로 갈리었으며, 막내 김세규(金世奎)의 후대에서는 화순파(和順派)와 영광파(靈光派)로 분파되었다.
인물
김환(金丸)의 다섯아들 중 김세규(金世奎)는 1582년(선조1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정경세(鄭俓世), 김선원(金仙源)등과 도의(道義)로 친교를 맺었으며, 성리학(性理學)과 예절에 박통(博通)했다.
김세규(金世奎)의 손자 김극수(金克粹)가 조선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선무랑(宣務郞)과 율봉 찰방(栗峯察訪)을 역임했고, 김경립(金慶立)의 아들 김택(金澤)은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 사복시정(司僕寺正) 등을 거쳐 대사간(大司諫, 간쟁, 논박을 맡았던 사간원 정 3 품 으뜸 벼슬)과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지냈다. 그외 김이태(金履兌)의 아들 김여정(金麗精)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김상호(金尙瑚)의 아들 김응추(金應秋)는 승문원 좌승지(承文院左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에 추증되어 가문을 빛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응천(金應天,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세규(金世奎, 1538 戊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15년(1582)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2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생원진사시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인천광역시
    부평(富平)은 경기도 부천시 일대에 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의 동남부지역이었다. 백제와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이라 불리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장제군(長堤郡)으로 개칭되어 한주(漢州: 廣州) 관하에 있었으며, 영현으로 분진(分津: 通津)·김포(金浦)·동성(童城)·술성(戌城) 등 4개현을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수주(樹州)로 개칭되었으며, 995년(성종 14)에 단련사를 파견하였다가 1005년에 혁파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주로 승격하였다가 1150년(의종 4)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개칭하였고, 금천(衿川)·동성(童城)·통진(通津)·공암(孔巖)·김포(金浦)·수안(守安) 등을 속현으로 포함하여 넓은 면적을 관할하였다. 1215년(고종 2)에는 이곳 계양산의 이름을 따서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했으며, 1308년(충렬왕 34)에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부평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다시 부평도호부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천부 부평군이 되었으며, 1896년 경기도 부평군이 되었다. 1914년 군부(郡府) 폐합령에 따라 넓은 지역이 인천부(仁川府)에 속하게 되었고, 나머지 지역과 주변의 일부지역을 합쳐서 부천군으로 발족하였다. 1973년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소사읍을 중심으로 한 부천시로 승격하였다. 부평군은 인천광역시 부평구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부평김씨는
    1985년에는 총 182가구 789명,
    2000년에는 총 403가구 1,28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