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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김씨(西河金氏)
유래
  •  시조 : 김맹성(金孟性)
    시조 김맹성(金孟性, 1437~1487)은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전하는 김훤술(金萱述, 해평김씨 시조)의 후손이다. 그의 자는 선원(善源), 호(號)는 지지당(止止堂)이다.
    그는 1476년(성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등제하고 헌납(獻納)을 거쳐 정언(正言)이 되고, 1478년 도승지(都承旨) 임사홍(任士洪)과 함께 현석규(玄碩圭)를 탄핵, 고령에 유배되었으나 1482년에 풀려나와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역임했다. 학덕(學德)이 뛰어나고 시문(詩文)에도 장하였으며, 저서(著書)에 <지지당시집(止止堂詩集)>이 있다. 본관을 서하(西河)로 하게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국조방목에는 본관이 해평김씨로 되어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남도 송화군
서하(西河)는 풍천(豊川)의 다른 이름으로 성종이 정했다.
본래 고구려의 구을현(仇乙縣 또는 仇遷縣)이었는데 신라의 경덕왕 때에 굴현(屈峴)으로 고쳐 양악군(楊嶽郡 : 지금의 안악군)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80년(태조 23)에 풍주(豊州)로 고쳤다가 성종 때에 도호부로 승격시켰고, 현종 때에 방어사를 두어 안악(安岳), 유주(儒州), 은율(殷栗), 청송(靑松), 가화(嘉禾), 영녕(永寧) 등을 관할하였으며 서해도(西海道)에 속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진(鎭)을 설치하여 병마사를 두었고, 1413년(태종 13)에 풍천군(豊川郡)으로 고쳤으며, 그 해에 은율현을 합쳐 풍률군(豊栗郡)이라 하였다가 뒤에 이를 다시 나누었다. 지금의 풍해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서하김씨는
1985년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2000년에는 총 7가구 1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