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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김씨(星州金氏)
유래
  •  시조 : 김맹
    <신라김씨이천년사>에 의하면 시조 김맹은 고려시대에 대장군을 지낸 인물로서 신라 희강왕이 후손이라는 설이 있고, 대안군 김은열의 12세손 김계명의 후손, 또는 대안군의 16세손이라는 설이 있으나 세계를 상고할 수 없다.

    다만 강계지에 그의 후손 응남이 처음으로 강계에 입향했다는 사적이 있을 뿐 분적된 연원은 알 수 없고, 후손들의 분포지가 관서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선대의 세거지인 성주를 본관으로 한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만성시조보에 의하면 중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를 지낸 김영숭이 시조라고 되어 있으나 김승숭(金承嵩)의 오역으로 보인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승숭(金承嵩) : 문과(文科) 중종23년(1528) 별시 병과(丙科)
 김익지(金益祉, 1641 辛巳生) : 무과(武科) 현종7년(1666) 별시 병과(丙科)
 김큰보(金大福, 1588 戊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종설(金宗說,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노양(金魯壤, 1815 乙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31년(1831) 식년시 삼등(三等)
 김치룡(金致龍, 1824 甲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철종10년(1859) 증광시 삼등(三等)
 김봉규(金鳳奎, 1828 戊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철종12년(1861) 식년시 이등(二等)
 김추길(金秋吉, 1603 癸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8년(1630) 식년시 이등(二等)
 김눌(金訥, 1526 丙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3년(1558) 식년시 이등(二等)
 김이복(金履馥, 1798 戊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27년(1827) 증광시 삼등(三等)
등 모두 12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3명, 생원진사시 8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 1930년도 국세조사 통계에 의하면 평남 강동군 만달면 사능리에 19호, 평북 강계군 공북면 공인동에 18호가 분포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
    성주(星州)는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하며 6가야연합국의 하나인 성산가야국(星山伽倻國)의 영토였다. 6세기 무렵 신라의 세력권에 들게 되어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여 성산군(星山郡)에 속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였다가 980년(경종 6)에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하여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 대주(岱州)로 바뀌어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다시 경산부로 환원되었다. 1295년(충렬왕 21)에 와서는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를 두어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다시 경산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성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이후 1616년(광해군 9)에는 신안군으로, 1631년(인조 1)에는 신안현으로 개칭되어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성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는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관할면이 성주·벽진면 등 9개면으로 폐합되었고, 1979년에 성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성주김씨는
    1985년에는 총 442가구 1,996명,
    2000년에는 총 928가구 3,02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