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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김씨(順興金氏)
유래
  •  시조 : 김함일(金咸逸)
    시조 김함일(金咸逸)은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12세손 김자창(金自昌)의 6세손으로 조선시대에 정랑을 지냈다 한다. 신라김씨이천년사(新羅金氏二千年史)에 그가 순흥김씨 시조로 나타나 있을 뿐 본관을 순흥으로 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의신(金義信,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4년(1636) 별시 병과(丙科)
 김최수(金最壽, 1684 甲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경종1년(1721)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2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생원진사시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
    순흥(順興)은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에 속해 있는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의 급벌산군(及伐山郡)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급산군(岌山郡)으로 고쳤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흥주(興州)라 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안동부(安東府)에 속하였다가 순안현(順安縣)으로 이속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그 후 충렬왕이 태(胎)를 봉안하여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승격되었으며, 충목왕이 태를 봉안하여 순흥부(順興府)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바뀌었다가, 1457년(세조 3)에 부사 이보흠(李甫欽)이 역모를 꾀하였다고 하여 풍기(豊基), 영천(榮川)에 나누어 편입시켰다. 1683년(숙종 9)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로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순흥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북도로 이관하였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군을 없애고 봉화(奉化)와 영주(榮州)에 각각 편입시켜 영주시에 속한 순흥면으로 남아 있다. 1980년 영주시가 생기면서 영풍군의 관할이 되었다가, 1995년에 영풍군이 영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순흥김씨는
    1985년에는 총 57가구 305명,
    2000년에는 총 202가구 70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