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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김씨(信川金氏)
유래
  •  시조 : 김득추(金得秋)
    시조 김득추(金得秋)는 김알지의 후손으로 조선개국(朝鮮開國)에 공을 세워 계림군에 봉해진 김균((金稛, 경주김씨 계림군파의 파조)의 7세손이며, 조선 세조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된 김종순(金從舜)의 현손(玄孫)이며, 상장군(上將軍) 김만종(金萬鐘)의 아들이다. 황해도 신천에 살다가 평안북도 가산군 동북면으로 옮겨 살면서 집안이 번창하자 후손들이 본관을 신천으로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근(金勤) : 역과(譯科) 연산군4년(1498) 식년시
* 모두 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역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평안북도 삭주군 수풍면
    평안북도 구성군 오봉면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평안북도 태천군 서면
    평안북도 태천군 강서면 은창동
    평안북도 벽동군 가별면
    평안북도 창성군 창성면
    항렬자
    • 54世
      한(漢)
      55世
      필(泌)
      56世
      승(承)
      57世
      봉(鳳)
      58世
      현(鉉)
      59世
      인(仁)
      60世
      명(明)
      61世
      -
      62世
      -
      63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55世孫은 54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신천
    신천(信川)은 황해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는 승산군(升山郡)이었고 고려 때에는 신주(信州)라고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두 지역 모두 중반군(重盤郡)에 소속되었고, 궁홀은 궐구(闕口)로 개칭되었다. 승산과 궐구는 태봉 때 또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 전에 신주(信州)와 유주(儒州)로 개칭된 것으로 짐작된다. 신주는 995년(성종 14) 방어진으로 바뀌었다가 1012년(현종 3) 폐지되고 황주(黃州)의 속현이 되었다. 유주는 1018년 풍주(豊州)의 속현이 되었다가 1259년(고종 46) 문화현(文化縣)으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신천으로 개칭되어 현감을 두었다가 1469년(예종 1)에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909년에 문화군과 병합되었다. 1952년에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노월면·산천면·용진면이 안악군으로 이관되었으며, 초리면·궁흥면의 일부를 송화군에 편입시키고 재령군 서초면의 일부와 삼천군 궁흥면·초리면·문화면의 일부를 통합해 군 영역을 조정하였다. 1953년에 재령군 용평리와 삼천군 덕천리의 일부, 1954년에 재령군 청천리의 일부, 1958년에는 벽성군의 온천리·도락리·냉정리·지남리가 이군에 이관되었다. 또한 1967년에는 온천리를 장재리로 개칭했고 온천리·송오리·원암리의 일부를 각각 분리·통합하여 온천리를 만들었다. 1977년에 봉황리를 새길리로, 석봉리를 새날리로 개칭하고 근로자리를 신설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신천김씨는
    1985년에는 총 604가구 2,505명,
    2000년에는 총 147가구 43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그 후 현손 대에 와서 김경문(金敬文)이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고 가산(嘉山)에서 태천(泰川)으로 옮겨 살며 태천파(泰川派)를 이루었으며, 김해문(金海文)은 박천(博川)으로 옮겨 살면서 박천파(博川派)로 세계를 이루며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