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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김씨(牙山金氏)
유래
  •  시조 : 김신검
    시조 김신검은 김씨분종보(金氏分宗譜)에 김자연의 아들로 벼슬이 예조판서에 오른 것으로 되어 있으나 세계를 알 수 없다. 의성김씨세보에 김용자의 후손인 안성파에 그의 부자가 보이는 점으로 보아 의성분파인 듯하다.

    또 세계를 밝힐 수 없는 김구를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는데, 그는 자가 직지요, 호는 귀산으로 1416년(태종16) 친시문과에 급제, 사성 상주목사를 거쳐 1448년(세종30) 판종부사사가 되어 사서를 언해했고 1458년(세조4) 초학자회를 언해하는 등 한문을 국역하는데 공이 컸다. 대사성 대제학을 거쳐 판중추부사에 이르러 치사했다. 경사에 밝고 성리학에 정통했다. 시호는 문장이다.
    그를 시조로 하는 아산김씨세보에는 조선개국공신인 경주김씨 계림군파조 김곤의 현손으로 되어 있다. 그가 아산으로 낙향 세거하므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아산으로 했다.
    그러나 경주김씨측에서는 부인하고 있다. 김구의 묘는 충남 아산군 일북면 사정리에 있다.
인물
김응문은 1570년(선조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은계도 찰방을 지냈고, 김두문 역시 찰방을 지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응문(金應文, 1537 丁酉生) : 문과(文科) 선조3년(1570) 식년시 병과(丙科)
 김찬(金璨)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 모두 2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
    아산(牙山)은 충청남도 북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아술현(牙述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음봉현(陰峰縣: 陰岑縣)으로 개칭하였고, 탕정군(湯井郡: 溫陽)의 영현(領縣)을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인주(仁州)로 고치고,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천안에 소속되었다가, 후에 아주(牙州)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아산현으로 개칭하였고, 1459년(세조 5)에 이르러 아산현을 온양군·신창군·평택현 등에 분속하였다가, 1464년 아산현으로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아산군으로 개편되었고, 1896년에 충청남도 아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온양·아산·신창의 3개 군을 통합하여 아산군이라고 칭하고 12개 면을 두었다. 1941년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하고, 1986년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하여 군에서 분리되었다. 1987년 배방면 공수리 일부가 온양시로 편입하였고, 탕정면 구령리가 배방면에 편입하였다. 1989년 신동 일부가 온양시에 편입, 염치면 석정리 일부가 온양시로 편입하였다. 1990년 염치면을 염치읍으로 승격하였다. 1995년 1월 온양시와 아산군이 다시 합쳐 도농복합형의 아산시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아산김씨는
    1985년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2000년에는 총 4가구 1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