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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김씨(梁山金氏)
유래
  •  시조 : 김연(金衍)
    시조 김연(金衍)은 고려 때 평양에 거주하였으며 벼슬이 통사사인(通事舍人)에 이르렀다.

    '고려사 열전'에 김연의 손자 김맹(金猛)에 대해서 "김맹은 양주 의춘현인이니 할아버지는 김연인데 평양에서 이사와서 살았다."고 적혀 있으므로 김연 때부터 본관을 양산으로 한것으로 보인다.
인물
김연의 손자 김맹(金猛, ?~1030)은 고려 때 중추부사, 태자소부(太子少傅) 등을 역임했다. 김맹의 아들 김덕부(金德符, ?~1082)는 태자빈객(太子賓客), 상서우복야에 이르렀다. 김치현(金致賢)은 연산군 때 황해도관찰사를 지냈으며 김응인(金應寅)은 예조좌랑을 지냈다. 김자정은 연산11년(1505년) 전남 강진읍 솔치마을로 낙향한 후 다시 작천면 군자리로 옮겼다. 행정(杏亭)마을에 터를 잡은 후손들은 인근 갈동, 퇴동, 보전마을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응인(金應寅, 1532 壬辰生) : 문과(文科) 명종13년(1558) 식년시 병과(丙科)
 김치현(金致賢) : 문과(文科) 연산군2년(1496) 식년시 병과(丙科)
 김응린(金應麟, 1559 己未生) : 무과(武科) 선조17년(1584) 별시 병과(丙科)
 김신광(金伸光,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8년(1630) 식년시 병과(丙科)
 김지현(金知賢)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숙보(金叔寶)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연산군10년(1504)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3명, 생원진사시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16世
      두(斗)
      17世
      순(淳)
      18世
      권(權)
      19世
      환(煥)
      20世
      재(在)
      철(喆)
      21世
      -
      22世
      -
      23世
      -
      24世
      -
      2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7世孫은 16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양산
    양산(梁山)은 경상남도 남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665년(신라 문무왕 5) 이곳에 삽량주(歃良州)를 설치하였다. 이후 757년(경덕왕 16)에 구주(九州)의 하나인 양주(良州)로 개편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양주(梁州)로 개칭했으며, 성종 때에는 방어사를 두었다. 1018년(현종 9)에 양주군으로 고쳤고, 충렬왕 때 잠시 밀성군에 폐합되었다가 곧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양산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의춘(宜春)·순정(順正) 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양산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남도 양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기장군이 동래군에 통합되었고, 1973년에 동래군이 양산군에 통합되었다. 1979년에는 양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6년에는 양산군이 시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양산김씨는
    1985년에는 총 645가구 2,773명,
    2000년에는 총 820가구 2,62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