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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김씨(靈光金氏)
유래
  •  시조 : 김심언(金審言)
    시조 김심언(金審言, ?~1018)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손자이다.

    그는 김은열의 셋째 아들 김해군(金海君) 김염(金濂)의 둘째 아들로 당대의 석학 최섬(崔暹)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현종 때 내사시랑 평장사(內史侍郎平章事)를 역임하고 오성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영광으로 하였다. 그의 아들 김윤보(金允輔), 현손 김극검 이후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이 없어져서 후손의 파조들을 1세 조상으로 하였다.
인물
김심언의 아들 김윤보(金允輔)가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판소부시사(判少府寺事)를 역임했고, 현손(玄孫) 김극검(金克儉)은 고려 숙종 때에 태자소사(太子少師)를 역임하였다. 김극검의 아들 김영부(金永夫, 1096~1172)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와 판병부사(判兵部事)를 역임하였다.

- 김천보(千寶) : 대호군에 봉해졌다.
- 김사순(思順) : 병부상서를 지냈다.
- 김해(該) : 병마절제사를 지냈다.
- 김필(珌) : 참판을 지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성유(金聖猷, 1717 丁酉生) : 문과(文科) 영조32년(1756)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만형(金萬亨, 1679 己未生) : 문과(文科) 숙종43년(1717) 별시2 병과(丙科)
 김급(金汲, 1661 辛丑生) : 문과(文科) 숙종37년(1711) 식년시 병과(丙科)
 김필(金○) : 문과(文科) 세조3년(1457) 중시 정과(丁科)
 김의정(金義精) : 문과(文科) 문종0년(1450) 식년시 을과(乙科)
 김개(金漑) : 문과(文科) 연산군7년(1501) 식년시 갑과(甲科)
 김필(金○) : 문과(文科) 세종29년(1447) 식년시 을과(乙科)
 김물(金勿) : 문과(文科) 성종20년(1489) 식년시 갑과(甲科)
 김한로(金漢老, 1646 丙戌生) : 문과(文科) 숙종1년(1675) 식년시 병과(丙科)
 김중태(金重泰, 1663 癸卯生) : 문과(文科) 숙종16년(1690)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6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3명, 무과 21명, 생원진사시 26명, 의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금안리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월평리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 수산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원청리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범서면 척과리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석천리
    항렬자
    • 18世
      강(綱)
      필(必)
      19世
      상(尙)
      중(重)
      20世
      창(昌)
      석(錫)
      21世
      엽(曄)
      호(浩)
      22世
      기(基)
      수(秀)
      23世
      진(鎭)
      환(煥)
      24世
      -
      25世
      -
      26世
      -
      27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9世孫은 18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영광
    영광(靈光)은 전라남도 북서부 해안에 인접한 영광군 일대의 옛 지명으로 백제 때는 무호이군(武戶伊郡)이라 불렀다. 660년(신라 무열왕 7)에 모지(牟支)로 개칭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에는 무령군(武靈郡)으로 바꾸고, 장사현(長沙縣)·무송현(茂松縣)·고창현(高敞縣) 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광군(靈光郡)으로 바꾸었고, 속현으로 함풍현(咸豊縣: 咸平)·모평현(牟平縣: 咸平)·장사현(長沙縣)·무송현(茂松縣)·해제현(海際縣: 무안군 해제면 일대)·삼계현(森溪縣: 장성군 삼계면·삼서면 일대)·임치현(臨淄縣: 영광군 염산면·백수읍 일대)·육창현(六昌縣: 영광군 군남면 일대)을 거느린 대읍이었다. 정주(靜州) 또는 오성군(筽城郡)으로도 불리었다. 조선시대에도 영광군을 유지했으나, 1629~38,1755~64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영광군이 되었고, 1896년에는 전라남도 영광군이 되었고, 1955년에는 영광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광김씨는
    1985년에는 총 6,689가구 28,443명,
    2000년에는 총 9,974가구 32,41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