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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김씨(寧海金氏)
유래
  •  시조 : 김억민(金億敏)
    시조 김억민(金億敏)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金殷說)의 14세손이며, 구 안동김씨의 중시조인 김방경(金方慶)의 7세손이다.
    김억민은 고려 말에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조선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으로 안동군(安東君)에 봉해진 김철(金鐵)의 손자다.
    김억민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병조정랑(兵曹正郞)을 거쳐 영해부사(寧海府使)를 역임함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영해로 하였다.

    - 묘소는 함경북도 학성군 학남면 금산동 동막촌(東幕村) 사을포산(思乙浦山)에 있다.
인물
- 김세봉(金世鳳) :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 김기영(金基濚) : 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을 지냈다.
세거지
- 함경북도 학성군(鶴城郡)
- 함경북도 영흥군(永興郡)

항렬자
  • 12世
    영(英)
    옥(玉)
    13世
    원(源)
    항(恒)
    권(權)
    14世
    후(厚)
    기(基)
    15世
    용(鏞)
    용(龍)
    필(弼)
    석(錫)
    16世
    홍(洪)
    성(成)
    국(國)
    복(福)
    17世
    근(根)
    흥(興)
    18世
    희(熙)
    19世
    상(相)
    20世
    -
    21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3世孫은 12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영덕
영해(寧海)는 경상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일찍이 고구려의 야시홀(也尸忽)과 우시국(于尸國)이 있었다. 79년(신라 탈해왕 23)에 신라가 병합하여 757년(경덕왕 16)에 우시국을 유린군(有隣郡)으로, 야시홀을 야성군(野城郡)으로 바꾸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덕(盈德)과 예주(禮州)로 개칭하였으며, 1018년(현종 9)에 예주(禮州)에 병합되었다가 후에 다시 분리시켜서 현령(縣令)을 두었다. 1258년(고종 45)에 예주가 덕원소도호부로 승격하였고 1310년(충선왕 2)에는 영해부로 개편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가 설치되었고 1415년 지현사(知縣事)를 두었다가 현령(縣令)이 파견 되어 조선시대 동안 명맥이 이어졌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영덕과 영해현은 안동부로 이관되었다가, 이듬해 경상북도로 관할이 변경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해군이 폐지되고 영해면으로 축소되어 영덕군에 통합되었고, 1979년에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현재 영덕군의 관할구역은 영덕읍·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축산면·영해면·병곡면·창수면 등 1읍 8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해김씨는
1985년에는 총 170가구 726명,
2000년에는 총 214가구 71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