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즐겨찾기 등록











 
용궁김씨(龍宮金氏)
유래
  •  시조 : 김존중(金存中)
    시조 김존중(金存中. 1111~1156)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金殷說)公의 8세손이다.

    김존중은 고려 인종 때 문장(文章)이 뛰어나 태자시학(太子侍學)이 되고 문과에 급제한 후 첨사부록사(詹事府錄事)가 되었다. 1146년 의종이 즉위한뒤 태자소보에 이르러 용궁군(龍宮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용궁으로 하였다.
인물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 1560~1593)은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수성장으로서 순절하여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되고, 진주 창렬사에 향사되었다.
낭선재의 아들 율헌공(栗軒公) 김준걸(金俊傑)이 옥종면에서 양보면으로 이주하였다. 율헌공의 증손 5형제로부터 하동에 세거하는 벌족(閥族)이 되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희룡(金熙龍, 1765 乙酉生) : 문과(文科) 순조1년(1801) 식년시 병과(丙科)
 김찬(金纘, 1665 乙巳生) : 무과(武科) 숙종21년(1695) 별시 병과(丙科)
 김경적(金景鏑)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대남(金大男, 1591 辛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우철(金友哲, 1615 乙卯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필세(金弼世, 1639 己卯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김남기(金南紀, 1638 戊寅生) : 무과(武科) 현종7년(1666) 별시 병과(丙科)
 김효건(金孝健, 1619 己未生) : 무과(武科) 인조22년(1644) 정시 병과(丙科)
 김남환(金南煥, 1632 壬申生) : 무과(武科) 현종1년(1660) 식년시 병과(丙科)
 김득유(金得酉, 1549 己酉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44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10명, 생원진사시 11명, 의과 1명, 음양과 1명, 율과 5명, 주학 15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용궁 김씨가 16세기 중엽 무렵 오늘날 하동 지역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 17세기 중엽 이후 하동의 여러 곳으로 번져 나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율헌공의 증손 5형제로부터 하동의 벌족을 이루었다. 율헌공 김준걸의 증손인 금암공 김상구의 아들 김중운의 후손들은 하동군 적량면 관리로 이주하였다.
    항렬자
    • 23世
      ○식(植)
      ○권(權)
      ○근(根)
      ○기(棋)
      24世
      병(炳)○
      환(煥)○
      현(炫)○
      희(熙)○
      찬(燦)○
      25世
      ○규(奎)
      ○규(圭)
      ○기(基)
      ○채(埰)
      ○배(培)
      26世
      석(錫)○
      현(鉉)○
      용(鏞)○
      용(鎔)○
      진(鎭)○
      27世
      ○우(雨)
      ○수(洙)
      ○태(泰)
      ○영(永)
      ○원(源)
      28世
      상(相)○
      기(杞)○
      동(東)○
      병(秉)○
      병(柄)○
      29世
      ○훈(勳)
      ○렬(烈)
      ○주(炷)
      ○혁(爀)
      ○섭(爕)
      30世
      재(載)○
      경(坰)○
      은(垠)○
      제(堤)○
      준(埈)○
      31世
      ○록(錄)
      ○호(鎬)
      ○종(鍾)
      ○은(銀)
      ○수(銖)
      32世
      광(洸)○
      양(洋)○
      영(泳)○
      홍(洪)○
      종(淙)○
      33世
      ○걸(杰)
      ○표(杓)
      ○환(桓)
      ○주(柱)
      ○광(侊)
      34世
      홍(烘)○
      형(炯)○
      경(炅)○
      연(煉)○
      소(昭)○
      35世
      ○훈(塤)
      ○호(壕)
      ○재(在)
      ○균(均)
      ○곤(坤)
      36世
      익(釴)○
      예(銳)○
      진(鉁)○
      병(鈵)○
      주(鉒)○
      37世
      -
      38世
      -
      39世
      -
      40世
      -
      41世
      -
      42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4世孫은 23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
    용궁(龍宮)은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에 속한 지명으로 신라시대에 축산현(竺山縣)·원산현(園山縣)이라 하였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의 영현이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 용주(龍州)로 승격되었다가, 목종 때 군으로 강등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용궁으로 고쳐서 상주(尙州)에 편입하였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현으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용궁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 용궁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폐지되어 신하면(申下面)은 의성군(義城郡)에, 나머지는 용궁면 등으로 분할되어 예천군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용궁김씨는
    1985년에는 총 3,327가구 14,853명,
    2000년에는 총 3,325가구 10,66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이여재(二如齋)는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에 있는 율헌공 김준걸을 시향하는 재실이다.

    구산재(龜山齋)는 하동군 적량면 관리에 있는데, 구자산(龜玆山) 아래에 있다는 연유로 구산재라고 했다. 율헌공 김준걸의 증손인 금암공 김상구의 후손들이 선산을 수호하고 해마다 모여 시향(時享)을 드리는 율헌공파의 재실이다.

    영언재(永言齋)는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서촌에 위치하는데, 우천공파(愚川公派)[김상구의 동생인 우천공 김상함(金尙喊)]의 재실이다.

    계술재(繼述齋)는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용궁 김씨 재실인데, 처사 김상침(金尙琛)과 증호조참판 김중원(金重元)을 향사한다.

    한서암(寒捿菴)은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용궁 김씨의 서재인데, 추연(秋淵) 권용현(權龍鉉. 1899~1987)의 기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