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즐겨찾기 등록











 
용성김씨(龍城金氏)
유래
  • 시조 김시보(金時輔)의 자는 공이(公耳), 국주(國柱)로 신라 경순왕의 제4자 김은열(金殷說) 손자인 수원김씨(水原金氏) 시조 김품언(金稟言)의 22세손이며, 김의지(金義之)의 아들이다.
    그는 무공랑(務功郞)으로서 1495년(연산군 1년) 증광시 생원으로 급제, 1507년(중종 2) 식년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현감(縣監)을 지냈음이 사마방목(司馬榜目)과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 보이며 또한 수원김씨세보(水原金氏世譜)에도 나타나 있다. 그의 급제 당시 본관이 용성(龍城)이고 세거지가 밀양인 점으로 보아 그의 선대에서 밀양으로 이주후에 전 세거지였던 용성을 본관으로 하게 된 듯하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시보(金時輔) : 문과(文科) 중종2년(1507) 식년시 을과(乙科)
 김계인(金戒仁,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대남(金大男,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시보(金時輔)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연산군1년(1495)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4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화성
    용성(龍城)은 경기도 화성군의 옛 이름이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용성김씨는
    1985년에는 총 20가구 80명,
    2000년에는 총 32가구 10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