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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김씨(牛峰金氏)
유래
  •  시조 : 김오(金澳)
    시조 김오(金澳)는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인 김명종(金鳴鐘)의 맏아들이다. 김오는 고려 성종 때 시어사(侍御史)로 공을 세워 수지의후(首知衣侯)에 봉해지고 다시 우잠군(牛岑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우봉으로 하였다.

    다른 일설에는 김오의 5세손인 김원길이 고려 원종 때 도위로 공을 세워 우봉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우봉으로 했다고도 한다.
인물
우본김씨는 조선후기에 92명의 역관을 배출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역관 가문이다.

- 김항일(金恒逸) : 고려의 문하시중이다.
- 김관의(金寬懿) : 좌정승을 지냈다.
- 김질(金瓆) : 대제학을 지냈다.
- 김서덕(金瑞德), 김우서(金禹瑞) : 조선의 판서를 지냈다.
- 김지남(金指南), 김경문(金慶門) : 중추부지사를 지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류(金鏐) : 문과(文科) 중종2년(1507) 중시 삼등(三等)
 김류(金鏐) : 문과(文科) 연산군1년(1495) 별시 병과(丙科)
 김세익(金世益, 1876 丙子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증광시 병과(丙科)
 김탁(金鐸) : 문과(文科) 세종14년(1432)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김택남(金澤南, 1659 己亥生) : 무과(武科) 숙종15년(1689) 증광시 병과(丙科)
 김시련(金時鍊, 1850 庚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2년(1885) 식년시 삼등(三等)
 김정회(金鼎會, 1793 癸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34년(1834) 식년시 삼등(三等)
 김학례(金學禮, 1802 壬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9년(1819) 식년시 일등(一等)
 김백련(金百鍊, 1844 甲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4년(1867) 식년시 삼등(三等)
 김경문(金慶門, 1673 癸丑生) : 역과(譯科) 숙종16년(1690) 식년시
등 모두 122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4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4명, 역과 92명, 의과 2명, 음양과 3명, 율과 1명, 주학 15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답곡리
    -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리
    -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
    - 경상남도 양산시 서생면
    - 평안북도 창성군
    항렬자
    • 62世
      상(相)
      63世
      형(炯)
      64世
      기(基)
      65世
      진(鎭)
      66世
      태(泰)
      67世
      표(杓)
      68世
      경(炅)
      69世
      채(埰)
      70世
      영(鍈)
      71世
      제(濟)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63世孫은 62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금천
    우봉(牛峰)은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에는 우잠(牛岑: 牛嶺·首知衣)이라 불렸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우봉으로 고쳤다. 1015년(고려 현종 6)에는 평주현(平州縣: 平山)에 예속되었고, 1062년(문종 16)에 경기도 개성부에 예속되었다. 1395년(태조 4)에 현으로 승격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황해도에 속하였다. 1469년(예종 1)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1652년(효종 3)에 강음(江陰)·우봉과 합쳐 금천군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음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우봉(牛峰)·토산(兎山)·강음을 금천군으로 통합하였다. 1954년 황해도가 남도·북도로 분할됨에 따라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우봉김씨는
    1985년에는 총 614가구 2,504명,
    2000년에는 총 915가구 2,98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