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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김씨(蔚山金氏)
유래
  •  시조 : 김덕지(金德摯)
    시조는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과 죽방부인 박씨의 둘째 아들이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하려 할 때 극력 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마의태자(경순왕의 첫째 아들 김일)를 따라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일설에 화엄종(華嚴宗)에 귀의하여 법수사(法水寺)와 해인사(海印寺)에 드나들면서 망국의 한을 달랬는데, 승명이 범공(梵空)이라 한다. 그러나 그의 행방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되고 김덕지의 14세손인 김환(金環)이 고려 고려 충숙왕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고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짐으로서 그의 후손들이 김환을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울산으로 하였다. 학성은 지금의 울산이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대명(金大鳴, 1536 丙申生) : 문과(文科) 선조3년(1570)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종진(金宗振, 1574 甲戌生) : 문과(文科) 광해군2년(1610) 식년시 병과(丙科)
 김상희(金相熙, 1864 甲子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식년시 병과(丙科)
 김백균(金百鈞) : 문과(文科) 명종4년(1549) 식년시 갑과(甲科)
 김동주(金東柱, 1857 丁巳生) : 문과(文科) 고종20년(1883) 식년시 병과(丙科)
 김진호(金鎭祜, 1847 丁未生)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식년시 병과(丙科)
 김헌수(金憲洙, 1865 乙丑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식년시 갑과(甲科)
 김인후(金麟厚, 1510 庚午生) : 문과(文科) 중종35년(1540) 별시 병과(丙科)
 김흥수(金興洙, 1864 甲子生) : 문과(文科) 고종22년(1885) 식년시 을과(乙科)
 김상호(金相昊, 1865 乙丑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식년시 을과(乙科)
등 모두 57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2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44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 김인후(金麟厚) : 조선 중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로 호남에서는 예로부터 4대 명족의 하나로 꼽았다.
    - 김병로(金炳魯) : 초대 대법원장
    - 김성수(金性洙) : 제2대 부통령. 호는 인촌(仁村)
    항렬자
    • 32世
      환(煥)
      33世
      요(堯)
      34世
      중(中)
      35世
      수(洙)
      36世
      상(相)
      37世
      병(炳)
      38世
      재(載)
      39世
      구(九)
      40世
      치(治)○
      41世
      ○래(來)
      42世
      광(光)○
      43世
      ○표(杓)
      44世
      연(鍊)○
      45世
      ○홍(洪)
      46世
      병(秉)○
      47世
      ○희(熙)
      48世
      노(老)○
      49世
      -
      50世
      -
      51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3世孫은 32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산(蔚山)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한 고장으로 본래는 진한(辰韓)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굴아화촌(屈阿火村)으로 파사왕(婆娑王) 때에 지변현(知邊縣: 戒邊城·神鶴城·火城郡)을 설치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하곡현(河曲縣)으로 고쳐 임관군(臨關郡)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이 고장 사람인 박윤웅이 태조를 도운 공으로 우풍현(虞風縣)과 동진현(東津縣)을 병합해 흥려부(興麗府)로 승격되었다가, 991년(성종 10)에 공화현(恭化縣)으로 강등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울주군(蔚州郡)이 되어 속현으로 동래현(東萊縣)과 헌양현(陽縣)을 관할하였다가 방어사로 고쳤다. 1397년(태조 6)에 진(鎭)을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진을 혁파하고 울산군으로 고쳤다. 1418년에는 염포(鹽浦)를 개항해 일본에 대한 문호를 열었으나,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왜관이 폐지되었다. 임진왜란중인 1598년(선조 31)에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로 승격되어 병마절도사가 부사를 겸하게 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다시 별도로 부사를 파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울산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울산군이 되었다. 고려 성종 때, 울산의 별칭을 학성(鶴城)이라고 하였다. 1906년에는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斗入地)인 외남면·웅상면이 양산군으로 이관된 대신 경주의 두입지인 외남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울산군의 21개면이 14개면으로 통합되었고, 언양군은 폐지되어 언양군의 6개면이 5개면으로 폐합, 울산군에 편입되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울산읍을 시로 승격하였다. 1995년에 울산시와 울산군을 통합하고, 1997년 울산광역시로 출범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울산김씨는
    1985년에는 총 7,556가구 31,623명,
    2000년에는 총 11,270가구 36,22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