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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김씨(全州金氏)
유래
  •  시조 : 김태서(金台瑞)
    시조 김태서(金台瑞. ?~1257. 시호는 문장)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이다. 김태서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1232년(고종 19)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추밀원부사(樞密院府使), 상장군(上將軍) 등을 지냈으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1254년(고려 고종 41년) 몽고의 침입으로 경주일대가 폐허가 되자 가족을 데리고 전주로 이사를 했다. 후에 고종과 명종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역임한 명신이라고하여 완산군(完山君, 전주)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하였다.

    - 묘소는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모악산)에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성진(金聲振, 1641 辛巳生) : 문과(文科) 숙종5년(1679) 식년시 병과(丙科)
 김홍철(金泓哲, 1737 丁巳生) : 문과(文科) 영조44년(1768) 식년시 병과(丙科)
 김상려(金尙礪, 1723 癸卯生) : 문과(文科) 정조13년(1789) 식년시 병과(丙科)
 김이(金○, 1540 庚子生) : 문과(文科) 선조15년(1582) 식년시 병과(丙科)
 김재환(金載瓛, 1814 甲戌生) : 문과(文科) 철종3년(1852) 식년시 병과(丙科)
 김용정(金用鼎, 1814 甲戌生) : 문과(文科) 헌종6년(1840) 식년시 병과(丙科)
 김익후(金益○, 1717 丁酉生) : 문과(文科) 영조23년(1747) 식년시 을과(乙科)
 김석태(金錫泰, 1871 辛未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식년시 을과(乙科)
 김우추(金宇樞, 1687 丁卯生) : 문과(文科) 숙종41년(1715) 식년시 병과(丙科)
 김희유(金熙○, 1795 乙卯生) : 문과(文科) 순조25년(1825)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60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9명, 무과 45명, 생원진사시 65명, 역과 5명, 의과 8명, 음양과 1명, 율과 8명, 주학 9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평안북도 후창군 후창면 일원
    평안북도 초산군 일원
    평안북도 영변군 일원
    평안남도 평원군 일원
    평안남도 평양시 일원
    함경남도 영흥군 일원
    함경남도 고원군 영동면 일원
    함경남도 문천군 문천면 부거리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청운동
    경상북도 안동시 일원
    항렬자
    • 28世
      영(永)
      기(琪)
      락(洛)
      려(麗)
      약(若)
      29世
      희(喜)
      준(俊)
      택(澤)
      현(鉉)
      갑(甲)
      30世
      직(稷)
      승(承)
      봉(鳳)
      익(益)
      원(冕)
      31世
      순(淳)
      병(炳)
      곤(坤)
      치(致)
      규(奎)
      32世
      락(洛)
      균(均)
      성(聖)
      석(錫)
      33世
      진(鎭)
      정(政)
      욱(郁)
      34世
      -
      35世
      -
      36世
      -
      37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9世孫은 28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
    전주(全州)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甄萱)이 무주(武州: 光州)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다. 995년에는 강남도(江南道)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1355년(공민왕 4)에는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全州府)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전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전주군으로 개편된 이래 1935년 전주면이 부로 승격하여 독립하고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주김씨는
    1985년에는 총 12,437가구 52,251명,
    2000년에는 총 18,126가구 57,97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