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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김씨(靑松金氏)
유래
  •  시조 : 김정기(金正己)
    시조 김정기(金正己)는 신라 경순왕의 14세손으로 조선 태조 때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하고 직간(直諫)을 하다 태조의 비위에 거슬려 중산(仲山 : 지금의 정평)으로 유배되었다. 그후 청송에서 중산부(仲山府) 세유면(細柳面) 세양리(細陽里)로 옮겨 살다가 일생을 마치니, 후손들이 김정기(金正己)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청송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하였다.
인물
김정기(金正己)의 아들 김옥형(金玉衡)이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했고, 손자 김보중(金寶重)은 통덕랑(通德郞)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김보중의 맏아들 김치성(金致誠)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내고 장곡면(長谷面)으로 이주하였고, 차남 김이성(金以誠)은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한편 김치성(金致誠)의 아들 4형제 중 맏아들 김계인(金繼仁)은 오위(五衛)의 부사직(副司直)을 지냈으며, 차남 김계의(金繼義)와 막내 김계지(金繼智)는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그외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절한 김승빈(金勝玭)이 유명했고, 김명종(金命宗)은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여 사복시정을 지낸 김대춘(金大春)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종탁(金宗鐸, 1728 戊申生) : 문과(文科) 정조0년(1776) 정시 병과(丙科)
 김중만(金重萬, 1666 丙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28년(1702) 식년시
 김종수(金宗○, 1732 壬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47년(1771) 식년시 삼등(三等)
 김종익(金宗, 1740 庚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3년(1789)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4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생원진사시 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
    청송(靑松)은 경상북도 중부 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청송군의 파천면 일부는 고구려 말에 청기현(靑杞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적선현(積善縣)으로 개칭되어 야성군(野城郡: 盈德)의 영현이 되었다. 적선현은 고려 초에 부이(鳧伊) 또는 운봉(雲鳳)으로 불리다가 986년(성종 5) 청부현(靑鳧縣)으로 개칭되어 예주군(禮州郡: 盈德郡)에 속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예주(禮州: 寧海)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감무를 파견하였다. 1394년(태조 3) 진보현(眞寶縣)을 합병하였다. 1419년(세종 1)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하였다. 후에 진보와 분리되었고 세조 때 송생현(松生縣)을 병합하여 청송군으로 개칭되었으며, 안덕현(安德縣)을 병합하여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청송군·진보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북도 청송군·진보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진보군 일부를 합하여 8개면으로 개편하였다. 1979년 5월 청송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 영양군 입암면 방전리·홍구리 등 일부를 편입하였다. 현재 청송군은 청송읍과 부동·부남·현동·현서·안덕·파천·진보면 등 1읍 7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청송김씨는
    1985년에는 총 253가구 1,117명,
    2000년에는 총 504가구 1,64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