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즐겨찾기 등록











 
파주김씨(坡州金氏)
유래
  •  시조 : 김영긍(金永兢)
    시조 김영긍(金永兢)은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이조참의(使曺參議)를 지냈다고 한다. 문헌이 없으므로 세계는 알 수 가 없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파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

    - 파평김씨(坡平金氏)와 동원으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파주
경기도 파주시(坡州市)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과 술이홀현(述爾忽縣)을 설치했던 지역으로 옛 파주목과 교하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각각 파평현(坡平縣)과 봉성현(峰城縣)으로 각각 개칭하여 내소(來蘇: 楊州)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파평현을 장단현(長端縣)으로 바꾸었고,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설치되면서 독립하였고, 1183년(명종 13)에 봉성현을 서원현(瑞原縣)으로 개칭하였다. 1398년(태조 7)에 서원군(瑞原郡)과 파평현(坡平縣)을 병합하여 원평군(原平郡)이라 하였고, 1415년(태종 15) 교하현(交河縣)을 원평군에 폐합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뒤에 교하현은 다시 환원되었으나 도호부는 그대로 두었다. 1459년(세조 5)에 파주목(牧)으로 승격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에 본 주(州)를 유행지소(遊幸之所)로 삼고 나머지 땅은 인접 고을에 소속시켰다. 1506년(중종 1) 다시 파주목으로 복귀되었다. 영평(領平)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한성부 파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교하군이 폐지되어 파주에 병합됨으로써 임진강 하구인 서쪽으로 면적이 넓어졌다. 1945년 연천군 관할이었던 적성면(積城面)·남면(南面)을 편입하였으며, 1946년 남면을 양주군에 이관하였다. 196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단군(長湍郡) 군내면(郡內面) 조산리(造山里)가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 관할 주내읍이 파주읍으로 개칭되었고, 1996년 파주군이 시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파주김씨는
1985년에는 총 74가구 322명,
2000년에는 총 167가구 53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