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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김씨(坡平金氏)
유래
  •  시조 : 김장수(金長壽)
    시조 김장수(金長壽)의 호는 포제(浦提)이다. 김장수는 염주(鹽州 : 현 연백) 사람으로 일찍이 당나라 명신 초은(樵隱) 이인복(李仁復)의 문하에서 학문(學問)을 닦아 지식이 해박하고 경술(經術)이 뛰어났다.

    1361년(고려 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고 왕이 복주(福州 : 지금의 안동)로 피난하였을 때, 홍건적(紅巾賊)을 격퇴한 공으로 중랑장(中郞將) 겸 도지휘사(都指揮使)에 올랐다.

    1363년(고려 공민왕 13년) 중신(重臣) 김용(金鏞)이 공민왕이 흥왕사(興王寺)에 있음을 기회로 왕을 시해하려고 하자 밀직사 최영(崔瑩)을 따라 이를 평정하려 싸우다가 죽었다. 난이 평정되자 왕이 그의 절의를 가상히 여겨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책록하고 봉익대부(奉翊大夫)로 개성윤(開城尹)에 추증하였으며 파평군(坡平君)에 추봉(追封)한 후 시호를 충간(忠簡)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인물
김장수의 아들 김인기(金仁奇)가 보승중랑장(保勝中郞將)을 거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됨을 시작으로 하여 명문(名門)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김장수의 현손(玄孫) 김효신(金孝新)은 1453년(단종 1)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 정자(承文院 正字)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나갔다가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3형제가 뛰어났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기성(金起聲, 1646 丙戌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김시용(金時用, 1650 庚寅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김익선(金益善, 1623 癸亥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완(金浣, 1627 丁卯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진(金鎭, 1654 甲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10년(1684) 식년시 이등(二等)
 김창선(金昌善, 1618 戊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효종1년(1650) 증광시 삼등(三等)
 김정엽(金精燁, 1701 辛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7년(1741) 식년시 삼등(三等)
 김양로(金養魯, 1737 丁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47년(1771) 식년시 일등(一等)
 김연정(金鍊精, 1759 己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9년(1795) 식년시 삼등(三等)
 김명(金鳴, 1780 庚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7년(1807)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4명, 생원진사시 9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23世
      현(鉉)
      24世
      영(泳)
      25世
      모(模)
      26世
      찬(燦)
      27世
      기(基)
      28世
      종(鍾)
      29世
      원(源)
      30世
      상(相)
      31世
      엽(燁)
      32世
      규(奎)
      33世
      진(鎭)
      34世
      -
      35世
      -
      36世
      -
      37世
      -
      38世
      -
      39世
      -
      40世
      -
      41世
      -
      42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4世孫은 23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파주
    파평(坡平)은 경기도 파주시(坡州市)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과 술이홀현(述爾忽縣)을 설치했던 지역으로 옛 파주목과 교하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각각 파평현(坡平縣)과 봉성현(峰城縣)으로 각각 개칭하여 내소(來蘇: 楊州)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파평현을 장단현(長端縣)으로 바꾸었고,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설치되면서 독립하였고, 1183년(명종 13)에 봉성현을 서원현(瑞原縣)으로 개칭하였다. 1398년(태조 7)에 서원군(瑞原郡)과 파평현(坡平縣)을 병합하여 원평군(原平郡)이라 하였고, 1415년(태종 15) 교하현(交河縣)을 원평군에 폐합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뒤에 교하현은 다시 환원되었으나 도호부는 그대로 두었다. 1459년(세조 5)에 파주목(牧)으로 승격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에 본 주(州)를 유행지소(遊幸之所)로 삼고 나머지 땅은 인접 고을에 소속시켰다. 1506년(중종 1) 다시 파주목으로 복귀되었다. 영평(領平)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한성부 파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교하군이 폐지되어 파주에 병합됨으로써 임진강 하구인 서쪽으로 면적이 넓어졌다. 1945년 연천군 관할이었던 적성면(積城面)·남면(南面)을 편입하였으며, 1946년 남면을 양주군에 이관하였다. 196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단군(長湍郡) 군내면(郡內面) 조산리(造山里)가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 관할 주내읍이 파주읍으로 개칭되었고, 1996년 파주군이 시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파평김씨는
    1985년에는 총 467가구 2,112명,
    2000년에는 총 535가구 1,68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