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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김씨(豊川金氏, 영유)
유래
  •  시조 : 김영주(金英柱)
    시조 김영주(金英柱)는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이라고 전할 뿐 어느 시대의 인물이며 또는 어느 계통에서 분적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본관을 풍천으로 한 이유도 알 수 없으나 후손이 영유(평남평원의 옛이름)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아 조상의 거주지를 따라 본관을 풍천이라 한 것으로 짐작되나 고증할 수 없어 확실한 연유를 밝힐 수 없다.
    한편 <신라김씨동원분관록>에 의하면 영유김씨와 풍산김씨가 각각 다른 계통으로서 영유김씨의 시조는 김영철, 풍천김씨의 시조는 김익헌으로 되어 있으나 풍천김씨 역대중요인물에 김영철, 김익헌이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원으로 짐작된다.
인물
- 김영철(조선 무관) : 1618년(광해군10) 명나라가 건주위를 정벌하기 위해 우리 나라에 원병을 청해 왔을 때 좌영장 김응하의 선봉으로 출전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1625년(인조3) 탈출하여 명나라 등주에서 살다가 1631년 진가사의 선편으로 귀국했다. 1640년(인조18) 청나라가 개주를 공략하기 위해 우리 나라에 원병을 청해오자 중국어에 능통했으므로 상장 임경업 휘하에서 수군 5천명과 함께 참전했으나 다시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어 귀국했다. 1658년 조정에서 자모산성을 지킬 군사를 모집할 때 60세의 고령으로 뽑혀 20여년 동안 성을 지켰다.
- 김응향(조선 자:달부 관직:도사) : 1660년(현종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도사를 지냈다.
- 김익헌(조선 자:니장 관직:군수) : 1726년(영조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군수에 이르렀다.
- 김우석(金禹錫, 10세손) :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자모산성(慈母山城)에 들어갔다가 인조가 굴욕적인 강화(江華)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후세의 충신들에게 좌우명이 되었던 척화(斥和)의 시를 자모산 성문에 써 붙이고 통곡하였다. 청나라 장군이 척화시 아래 통곡하고 있는 김우석(金禹錫)의 목을 치려하자 그는 꿈적도 않고 앉아 있었으며 그의 열 살된 아들 김응원(金應元)이 아버지를 끌어안고 함께 우니 청나라 장군도 감동하여 죽이지 못했다고 한다. 인조는 김우석(金禹錫)의 충절을 기려 정표(旌表)를 내렸고, 그의 아들 김응원(金應元)은 가장 어린 나이로 효의 정표를 받은 것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철수(金喆修, 1767 丁亥生) : 문과(文科) 정조18년(1794) 정시 병과(丙科)
 김옥래(金玉來, 1822 壬午生) : 문과(文科) 철종9년(1858) 식년시 병과(丙科)
 김익침(金益○, 1695 乙亥生) : 문과(文科) 경종1년(1721) 식년시 병과(丙科)
 김익헌(金益憲, 1689 己巳生) : 문과(文科) 영조2년(1726) 식년시 병과(丙科)
 김붕래(金朋來, 1813 癸酉生) : 문과(文科) 철종3년(1852) 식년시 병과(丙科)
 김경익(金烱翼, 1844 甲辰生) : 문과(文科) 고종16년(1879) 식년시 을과(乙科)
 김귀상(金貴尙)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인례(金仁○, 1653 癸巳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김종기(金宗器)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득선(金得善, 1628 戊辰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24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6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1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송화
    풍천(豊川)은 황해도에 있었던 옛 지명으로 고구려 깨에는 구을현(仇乙縣) 또는 굴천(屈遷)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굴현현(屈峴縣)으로 개칭하고, 양악군(楊岳郡: 安岳)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이름을 바꾸고, 995년(성종 14) 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1018년(현종 9) 군으로 강등되고 방어사(防御使)가 설치되었다. 1395년(태조 6) 진(鎭)이 설치되었고 병마사(兵馬使)가 지주사(知州使)를 겸했으며,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은율(殷栗)을 합병하여 풍율군(豊栗郡)이라 하였다가 곧 분리하였다. 1469년(예종 1)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풍천도호부(豊川都護府)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풍천군이 되어 해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황해도 풍천군이 되었다. 1909년 풍천군을 폐지하여 송화군(松禾郡)에 합병했으나, 1967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대부분의 옛 풍천도호부 지역이 과일군으로 분리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풍천김씨는
    1985년에는 총 447가구 1,923명,
    2000년에는 총 733가구 2,29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