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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김씨(海南金氏)
유래
  •  시조 : 김인(金忍)
    시조 김인(金忍)은 경순왕의 셋째아들 김명종(金鳴鍾)의 19세손으로 조선 태종 때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남병(南兵)의 좌막(佐幕)으로 있었다. 이후 후손들이 본관을 당악(棠岳 : 해남의 옛 지명)으로 하고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해남김씨가 해남에 정착한 것은 고려 말 김인의 3대조인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낸 김남보(金南寶)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응문(金應文, 1653 癸巳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김명훈(金命訓,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수견(金水見,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득신(金得信, 1616 丙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군량(金君良, 1588 戊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득길(金得吉,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응진(金應震, 1567 丁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년(1624) 식년시 이등(二等)
 김익저(金益著, 1692 壬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1년(1735) 증광시 이등(二等)
* 모두 8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6명, 생원진사시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읍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
    해남(海南)은 전라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마한 때에는 구해국(狗奚國)이었다고 한다. 538년(백제 성왕 16)에 새금현(塞琴縣)이라 불리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 침명현(浸溟縣)으로 고쳐 양무군(陽武郡: 康津)의 관할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해남현으로 이름을 바꾸어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 영암군(靈巖郡)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뒤에 감무를 설치되면서 독립하였다. 1409년(태종 9)에 왜구의 극성으로 육지에 옮겨온 진도현(珍島縣)을 병합하여 해진군(海珍郡)이라 하였다. 1437년(세종 19)에는 다시 진도와 분리하여 현감을 두어 해남현이 되었고, 또 수군전라우수영을 두어 남쪽 해상 방비의 요지로 삼았다. 1448년(세종 30) 황원현(黃原縣)·옥산현(玉山縣)·죽산현(竹山縣)과 병합, 당악(棠岳)으로 개편하였다가 다시 해남현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해남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개편하면서 부근 도서를 완도군으로 이속시켰다. 1955년에 해남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남김씨는
    1985년에는 총 407가구 1,662명,
    2000년에는 총 765가구 2,45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