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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천김씨(熙川金氏, 온양)
유래
  •  시조 : 김우(金佑)
    시조 김우(金佑)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의 셋째 아들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여서 공을 세우고 고려 강종(1211~1213) 때에 신호위 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올라 온양군(溫陽君)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온양(溫陽)으로 하였다. 그의 13세손 김우(金宇. 시호는 양정)가 1400년(정종 2년) 내란을 평정한공으로 희천(위성)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김우(金宇)를 1세조상으로 하고 본관을 온양에서 희천으로 바꾸게 되었다.
인물
호조전서(戶曹典書) 영비(英庇)의 아들인 우(宇)는 무예(武藝)에 뛰어났고, 태종(太宗)과의 잠저(潛邸) 때 친분으로 태종의 즉위와 더불어 공신(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슬하에 유지(有智 : 예조 참판을 역임)·존신(存信 : 군수를 역임)·유절(공조 참판을 역임)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가문을 일으켰다. 우(佑)의 7세손 용(用)은 고려조에 광정대부(匡靖大夫)에 이르렀고,우(宇)의 현손(玄孫) 백순(伯醇)은 1528년(중종 2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친 후 외직으로 나가 수원 군수(水原郡守)와 의주목사(義州牧使)를 역임하며 치적(治蹟)으로 이름이 났으나 서북 출신이라 재상(宰相)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지낸 백균(百均)과 부사(府使) 낙(洛), 현감(縣監) 엄, 병조 참의(兵曹參議) 서진(瑞震), 감찰(監察) 양수(養秀) 등이 유명했고, 익환(益煥)은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하여 호조 판서(戶曹判書) 흥순(興順)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백순(金伯醇, 1494 甲寅生) : 문과(文科) 중종23년(1528) 식년시 병과(丙科)
 김규(金○, 1531 辛卯生) : 문과(文科) 명종19년(1564) 별시 병과(丙科)
 김종겸(金宗謙, 1748 戊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년(1801) 식년시 이등(二等)
 김현(金○, 1648 戊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7년(1681) 식년시 삼등(三等)
 김엽(金燁, 1564 甲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2년(1610) 식년시 이등(二等)
 김심원(金心源, 1831 辛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9년(1882) 식년시 삼등(三等)
 김백순(金伯醇, 1494 甲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14년(1519)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7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생원진사시 5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평안북도 희천
    희천(熙川)은 평안북도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이다. 본래는 고구려의 영토였고, 발해(渤海) 때는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에 속하였다. 한 때는 여진족이 점령하였으나 고려 초에 수복되어 청새진(淸塞鎭)이라 하였다. 1217년(고종 4) 서희(徐熙)가 거란의 침공을 막아 위주방어사(威州防禦使)로 승격되었다. 후에 서희의 이름을 따서 희주(熙州)로 고쳐 개주(价州: 价川)에서 현감(縣監)을 겸하게 되었다. 1396년(태조 5)에 희주군으로 독립하였고, 1413년(태종 13) 희천(熙川)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계부(江界府) 희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 평안북도 희주군이 되었다. 1949년 자강도가 신설되어 희천군이 편입되었고 1967년에 희천읍을 비롯한 희천군 일원을 희천시로 승격시켰다. 1981년 명문리·양지리를 송원군에 편입시켰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희천김씨는
    1985년에는 총 499가구 2,140명,
    2000년에는 총 772가구 2,51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 신라 경순왕의 아들 김추(金錘)는 946년 생인데, 아들 김우(金佑)가 1212년 경에 대장군에 올랐다면 2백여년을 살았다는 것이 되므로 맞지 않는다.